"개발자 윤리의식 강화해야···저작권 관련 법적기준 마련도 필요"
[서울파이낸스 이도경 기자] 최근 게임업계에 표절 관련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무분별한 유사 장르 작품을 찍어내기 보다는 게임 산업의 다양성을 키우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카카오게임즈 지난달 21일 출시한 '아키에이지 워'가 자사 대표작 '리니지2M'의 콘텐츠·시스템 등을 무단 도용했다며 소송을 진행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7일 입장문을 통해 "카카오게임즈의 아키에이지 워가 장르적 유사성을 벗어나 엔씨소프트의 IP(지적 재산)을 무단 도용하고 표절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사내외 전문가들의 분석과 논의를 거쳐 당사의 IP 보호를 위한 소송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카카오게임즈는 이에 대해 "엔씨소프트 측의 '아키에이지 워'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 주장은 동종 장르의 게임에 일반적으로 사용돼 온 게임 내 요소 및 배치 방법에 대한 것"이라며 반박했지만, 일부 게이머들과 인플루언서들은 아키에이지 워와 리니지2M의 유사점을 분석하며 "단순 장르적 유사성을 넘어섰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IP와 관련한 소송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021년 웹젠의 모바일 역할수행게임(RPG) 'R2M'이 '리니지M'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모방했다며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그간 엔씨소프트는 '리니지라이크(리니지 시리즈의 특징을 모방한 게임)' 게임의 범람에도 크게 법적 시비를 가리지 않아왔으나, 리니지를 모방한 게임들의 유사도가 점점 높아지자 더 이상의 IP 침해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엔씨소프트와 웹젠 사이 발생한 소송은 아직까지 진행 중에 있다.
넥슨 역시 표절 피해와 관련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넥슨은 지난 2021년 '다크앤다커'의 개발사인 '아이언메이스' 관계자를 상대로 미출시 프로젝트 무단 반출과 관련한 소송을 제기했다.
다크앤다커는 지난해 말 알파테스트 단계에서 입소문만으로 동시접속자 10만명을 모으며 '한국 인디게임의 기적'이라고 불려왔다.
넥슨에 따르면 관계자 A씨는 넥슨 신규개발본부 재직 당시 담당하던 미출시 게임 '프로젝트 P3'의 데이터를 무단으로 외부에 유출했으며, 프로젝트 구성원 전원에게 외부 투자 유치 등을 언급하며 집단 퇴직 후 외부에서 함께 프로젝트 P3과 유사한 게임을 출시하자고 제안했다.
넥슨 관계자는 "프로젝트 P3의 주요 개발인원이 빠자고 개발 방향을 전환한 후 불과 1년 뒤 아이언메이스에서 P3과 매우 유사한 '다크앤다커' 알파테스트를 진행했다"며 "아이언메이스가 설립된 지 10개월만에 다크앤다커 알파테스트가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달 8일 아이언메이스에 대한 강제 수사에 나섰으며, 다크앤다커는 현재 게임 플랫폼 '스팀' 페이지에서 삭제된 상태다.
이처럼 게임업계 내 표절 시비가 불거지는 것과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을 비롯한 모든 콘텐츠 산업이 마찬가지지만, 흥행 산업이라는 산업 특성 상 위험에 도전하기 보다는 성공한 IP 등 트렌드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며 "다만 최근에는 유사 장르에 대한 게이머들의 피로도도 크게 늘어난 만큼 국내 게임 산업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새로운 것들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게임업계의 표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 개발자들이 저작권 윤리의식을 강화함과 동시에 저작권법과 관련한 법적 기준을 명확히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게임학회 학회장)은 "한국 게임의 역사는 표절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초기 콘솔게임부터 온라인게임 등이 미국·일본 등의 게임을 카피했으며, 리니지가 출시된 이후에는 해당 게임의 시스템이 업계 표준이 되며 유사한 장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게임 개발자들 사이에 저작권 의식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미국·일본 등 게임 산업이 활성화된 국가의 경우 특정 게임 시스템을 차용하거나 모방하게 되면 업계 내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 역시 개발 문화 자체가 정화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위 교수는 "다만 개개인의 윤리적 판단만으로 표절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라며 "많은 국내 게임이 모호한 저작권 기준에 따른 허점을 노려 유사 장르 게임을 쏟아내고 있는 만큼 저작권 위반에 대한 법적 기준을 명확히 하고, 기업에서도 향후 자사의 게임 시스템과 IP를 특허·저작권 등을 통해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회에서는 반복되는 게임 저작권 이슈를 다룰 필요성을 느끼고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 2021년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콘텐츠산업진흥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해당 개정안은 콘분위 기능 강화를 위해 △사무국 인력 증가 △중재기능 △직권조정기능 △집단분쟁조정기능 등을을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다만 조정위 기능 강화만으로 게임업계에 만연한 '베끼기' 문화가 잠잠해질 지는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콘분위 기능을 강화한다고 해도, 저작권 판결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저작권법 이슈를 직접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대기업과 달리 소송으로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는 중소 게임사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게임사 간 분쟁 해결에 적극적으로 공헌하지 못한 콘분위에 대한 신뢰도 낮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