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악성 지라시'에 피멍드는 금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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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로 자금경색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을 당시 시장에 출처불명의 정보지(속칭 지라시)가 돌았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다올투자증권, 한양증권이 곧 매각된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날 롯데캐피탈도 연 15%대 고금리 기업어음(CP) 발행에 실패,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의 지라시 주인공이 됐다.

해당 기업들은 사실무근이라며 즉각 진화에 나섰다. 금융감독원도 악성 지라시 유포자에 대한 수사기관 신고 등 엄중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금융위원회는 자금시장 경색 해소를 위한 대규모 유동성 공급 지원책을 내놨다. 기업 유동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신속하게 자금을 공급해 부실화를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도 내비쳤다.

그러나 지라시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컸다. 당시는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자금시장 경색 우려가 커진 상황이었다. 건설사와 건설사에 돈을 대준 금융회사의 부실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단 시장의 공포심에 해당 지라시가 기름을 부은 것이다.

이는 투자심리 악화로 이어졌다. 시장에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냐'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해당 기업들의 회사채와 CP 금리는 연일 치솟았고, 자금조달 부담도 대폭 커졌다. 자금조달이 계속 어려워지면서 결국 다올투자증권은 다올금융그룹 계열사 매각 등의 자구책을 마련해야 했다.

다올금융의 사정에 정통한 금융권 관계자는 "건설·부동산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지면서 당연히 다올도 리스크가 커지긴 했지만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터무니 없는 내용의 그 지라시가 생각보다 시장에서 치명적이었다"며 "결국 팔을 잘라내는 심정으로 우량 계열사들을 매각해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지난 12일, 허무맹랑한 내용의 지라시가 또 한번 시장을 강타했다. 저축은행업권 상위사인 OK·웰컴저축은행 두 곳에서 PF 1조원대 결손이 발생해 계좌가 지급정지될 예정이니 예금잔액을 모두 인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사실이 아닌 '악성 루머'였다. 지난해 10월 지라시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6개월 만에 또한번 비슷한 지라시가 돈 것이다.

해당 저축은행들은 사실무근이라며 해명했고, 금감원과 저축은행중앙회도 해당 저축은행의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실제 OK저축은행과 웰컴저축은행의 건전성 지표인 자기자본(BIS)비율은 각각 11.4%, 12.51%로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유동성비율도 250.54%, 159.68%로 모두 저축은행 감독규정에서 정한 규제비율을 상회한다.

더구나 웰컴저축은행의 PF대출 규모는 5000억원으로, 지라시 내용의 1조원대 결손이 애초 불가능한 상황이다. OK저축은행의 PF대출 규모는 1조10억원이다. 지라시 내용대로라면 이 채권이 전부 부실화됐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이 최근 금융회사들에 대한 부동산PF 현황 모니터링을 강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라시의 내용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터무니 없는 내용의 지라시지만 이를 단순 '해프닝'으로 넘길 수 없는 이유는, 6개월 전 악성 지라시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위 2개 저축은행이 부실화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는 전체 저축은행업권을 넘어 금융·경제 전체 시스템을 위기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다. 투심에 따라 변동성이 커지는 금융·자본시장의 특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이라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으로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례가 나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금융당국은 악성 지라시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당국의 대응이 단순 엄포에 그쳐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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