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외교·경제·안보의 상관관계
[홍승희 칼럼] 외교·경제·안보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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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한국 대통령실 도청 논란이 국내에서는 꽤 희한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미 관계에서나 국내적으로나 짚어보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많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를 인정하는데 한국 정부는 부정하다가 도청을 한 미국을 변호하다가 끝내는 침묵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해외 언론들로부터도 비웃음을 사고 있다.

경제성장 만큼이나 정치·외교·통상 등에서도 많은 성장을 했다고 우리 스스로도 믿어왔고 또 국제사회에서도 인정했던 그간의 성과가 최근 들어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몇 십 년 전의 낡은 이념의 프레임에 갇혀 변화하는 국제질서의 중심으로 진전하던 걸음을 변방으로 되돌리는 통에 외교행보마다 초라한 혹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어느 나라든 외교 무대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경주하기 마련이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조차 외교에서의 실익을 얻기 위해 다각적인 준비를 하고 나선다. 이번 한국 대통령실 도청 사건도 일상적인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적어도 그 사건 정보가 흘러나온 배경에는 한국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앞선 주요한 정보를 탐지한 사실이 있었을 것이다.

현재 한`미 간에는 미국의 거의 일방적인 한국 산업 흡수 의지를 견제해야 할 한국 정부의 입장이 어떻게 피력될 수 있을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있고 미국으로서는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한 동유럽 국가들의 요청에 한국을 좀 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문제가 등장한 듯하다. 현 정부 들어 미국의 요구에 앞서 미리 패를 다 보여주는 서투른 외교 행보가 계속 도마 위에 오르고 있어서 이번 방미에도 국내에서의 기대치가 그다지 높지는 않아 보이지만.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진영을 나누고 싶어하는 제스처를 취하지만 실상 미국의 생산공장으로서 중국의 필요성을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방국들에게는 지속적으로 반 중국전선에 서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그런 요구에도 많은 나라들은 외교적 수사 이상으로 호응하지 않고 있고 또 사안별로는 여전히 중국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단지 한국 정부만 근래 들어 미국의 방패인양 앞장서서 스스로 희생양이 되고자 할 뿐이다.

한국은 그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근간으로 안보는 미국의 입장에 서되 경제적으로는 모든 국가와 좋은 관계를 갖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결과로 중국은 미국을 앞서는 한국의 최대 무역국가가 됐고 또 그 규모만큼이나 가장 큰 무역흑자를 기록한 상대국가였다. 

그런 경제적 관계는 안보에서도 상호 위협이 감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러시아와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미사일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는 미국보다 러시아의 도움이 더 컸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경제적 교류가 활발해지면 그만큼 안보 위협도 줄어든다는 사실을 그간의 외교·통상의 성과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근래 우크라이나 전쟁에 한국 정부가 너무 깊숙이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한국의 경제적 손실도 커져가지만 그 못지않게 안보적 위협도 더 증대되게 생겼다. 

남북 간 관계는 현 단계에서 현상유지가 최선이지만 그마저 흔들리고 있고 그에 더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까지 악화될 경우 한국은 당장 안보적 위협이 증대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통상을 넘어 코리아디스카운트가 더 커지는 매우 위험한 단계로 진입할 처지가 돼버렸다. 외교의 가장 큰 성과는 적을 줄이고 우방을 늘리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흔들리면서 자꾸 패싸움을 하고 싶어 하는 속성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런 미국의 성향을 오래 겪어 온 세계 각국은 구경꾼의 자리를 지키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는 것도 그런 외교적 스탠스에 다름 아니다.

지난 30년간 애써 구축해왔던 외교적 성과들이 1년 만에 허물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며 경악하고 있다. 경제적 지평을 넓히며 국제정치에서의 발언권을 늘려가고 안보적 안정성을 확대해온 역사가 부정당하며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를 국제관계에까지 투영시키는 몰지각한 정부로 인해 적을 늘리고 우방의 무시를 자초하고 있다. 그래서 곧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도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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