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금융은 만능이 아니다
[홍승희 칼럼] 금융은 만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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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가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들이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총재의 기자간담회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또 그날 발언도 대체로 매우 원론적인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관심을 받는 이유는 금융통화정책이 마치 만병통치약인양 모든 짐을 어깨에 얹어놓으려는 언론의 보도 경향에 대한 일침이 담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미국의 영향 때문이겠지만 세계 경제의 흐름을 주도하는 금융의 힘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작금의 상황과 인구 구조의 변화와 산업체계의 변화 등으로 각국의 재정팽창 정도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으로 심화돼 있다. 앞선 금융기술과 거대한 금융자본을 무기화한 미국의 세계전략으로 세계 경제의 흐름이 비정상화 돼 있다는 지적을 하는 경제전문가들도 나타나기 시작한 단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듯 미국의 금융 무기화는 단순히 경제시스템의 지배력 행사에 그치지 않고 국제질서를 좌우하기 위해 금융파워를 휘둘러왔다. 이런 미국의 금융파워는 이미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의 지위를 1단계 끌어내렸고 30년 장기불황으로 이어진 시련을 안겨줬다.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를 부른 직접적 무기도 금융이었다.

그 결과 중국이 어부지리를 얻어 미국의 턱밑을 위협하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동시에 미국의 제조업은 후퇴하는 부작용을 스스로 초래했다.

글로벌 밸류체인의 어젠다를 던진 것도 미국이고 미·중 무역분쟁을 벌이며 그 밸류체인을 훼손하고 나선 것도 미국이다. 그 미국이 지금 세계의 첨단 제조업을 미국내로 끌어들이고 지배력을 확장하기 위한 비논리적 무리수를 공공연히 두고 있다.

어떻든 그런 미국의 정책 변화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보고 대응해야 할 각국 정부 경제정책 담당부서들은 아직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특히 한국은 아직도 변화하는 미국 대신 홀로 몇 십 년 전 과거의 미국을 복사하기에 여념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은 답답한 경제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부존자원이 빈곤하고 좁은 국토에 인구밀도는 매우 높은 한국은 경제체질 자체가 미국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경제를 이념의 잣대로만 보고 미국 베끼기, 그것도 몇 십 년 전의 이론 추종하기에 열중하는 맹신자들도 적지 않다.

그런 이념추구의 경향성은 근래 들어 외교 노선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내며 세계무대에서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마치 길거리 주먹패들이 보스의 힘만 믿고 물색없이 설치는 꼴로 스스로의 미래를 매우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수출 없이 살 수 없는 나라다. 내수시장은 협소하고 자원은 보잘 것 없다.

따라서 한국은 어떻게든 적을 최소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기존 적이라도 우호적 관계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야 할 처지다.

그런데 기껏 우호관계를 이룩해온 주변국들을 갑자기 적으로 돌려 버리기 시작했다. 보스의 한마디에 과잉 충성하는 똘마니 같은 짓을 통해 적을 늘렸지만 그렇다고 보스가 잘했다고 등 한번 두드려주는 이상의 어떤 대가도 내놓지 않는다. 오히려 호구 잡혀 제 밥그릇까지 상납 당하는 모양새가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한국 수출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의 수출 5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서 그동안 누려온 갑의 지위를 반납하고 을의 위치로 전락하는 꼴이 됐다. 미국이 팔던 반도체를 못 팔게 됐다고 한국도 그 시장에 팔지 말라는 주문에도 정부는 입을 다물고 있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며 최대 무역 흑자국이었던 중국과의 교역은 몇 달 째 적자를 보이며 돌아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분쟁 중인 미국의 요구에 지나치게 협력한 결과다.

한국은 여러 면에서 미국의 요구를 전면 거부하기 힘든 처지임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고 따라서 한국 정부의 웬만한 양보는 대다수 국민들도 양해 가능하다. 그러나 밥그릇을 빼앗길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런 위험한 외교의 결과로 인한 불안한 경제 상황조차 금융통화정책에 지나치게 기대려는 희한한 기류는 과연 누가 누굴 위해 휘두르는 칼날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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