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건전재정 빌미로 나쁜 선례 만드나
[홍승희 칼럼] 건전재정 빌미로 나쁜 선례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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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정부가 예상했던 올해 세수에서 무려 59조1000억원이 감소할 것이라고 최근 떠들썩하다. 그러나 이 마저도 하반기 경기가 상반기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 기초한 것이어서 실제 세수는 더 줄어들 수도 있다.

이미 상반기 중에만 예상보다 40조원이 줄었으며 지난해와 비교해서도 34조원이 줄었다. 기획재정부 말로는 작년 상반기 세수가 전년도에 지연됐던 세금납부가 몫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기저효과 때문이라지만 올해 세수가 예상보다 크게 구멍이 났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급한 대로 상반기 중 한국은행에서 100조원을 빌려 구멍을 메꿨지만 부족분을 증세나 국채발행 등으로 대응할 뜻은 없다고 못 박았다. 건전재정이라는 정부 목표를 위해서라지만 그 부족분을 지난해까지 남은 불용예산과 연기금 등을 차용해서 메꿀 것이라니 뭔가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 아닌가 싶다.

기재부는 세수가 당초 추계와 이토록 크게 차이나는 이유는 국제경기가 예상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나라들도 모두 세수 추계가 어긋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처럼 큰 폭의 오차가 발생한 나라는 없다. 또 팬데믹 상황이 종료되더라도 올해 국제경기 전망은 애당초 그다지 밝지 않았다. 특히 미·중 패권전쟁 중인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어느 하나 낙관적 전망을 할 여지는 없었지만 기재부는 현 정부의 대중국 강경노선을 무시하고 중국의 리오프닝으로 한국경제에 청신호가 켜질 것이라는 행복회로를 그렸다.

그런 국제정세에 무지한 바탕 위에 내려진 낙관적 전망이 오류를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법인세 인하, 다주택자 양도세 인하 등 세수감소를 초래할 감세안은 연이어 내놓으면서 근로소득세는 소소한 구간 조정에만 그쳐 유일하게 이 부분에서만 세수가 늘었다.

그 탓에 감세의 혜택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은 치솟는 물가와 더불어 실질소득 감소를 선물로 받았다. 봉급생활자들의 실질소득 감소는 당연히 구매력 저하로 이어져 가뜩이나 힘든 내수경기를 더 위축시키고 있다.

기재부도 현재 상황이 당초 예상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에 재추계를 해 곧 발표할 예정이라지만 그마저도 하반기 중 다시 한 번 더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문제만 생기면 죄다 전임정부 책임으로 몰아붙이지만 안보와 경제를 구분하고 초강대국 간의 갈등 속에서도 우리의 입지를 지켜 실리를 챙겼던 전 정부와 달리 양쪽 어디에서도 실리를 챙기지 못하고 있어서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숙명을 지닌 한국은 되도록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하고 우군은 늘릴수록 좋다. 그러나 1년 반 만에 중국과 러시아라는 큰 경제 파트너들을 적으로 돌렸고 그렇다고 최우방이라는 미국으로부터도 실익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수를 활성화할 어떤 묘수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의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속에서 대다수 내수산업이 제대로 살아날 방도를 못찾는 것이다.

혹자는 현 정부가 서민들의 삶에 관심이 있기는 하겠냐고 비아냥댄다. 집권하자마자 부자감세부터 손을 대고 건설회사들의 안위가 중요해 한국경제의 뇌관이라는 가계부채를 불과 서너 달 사이에 7조원이나 늘어나게 만들었으니 그런 소릴 들어도 변명할 말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올해의 세수 부족분을 채우는 방법으로 연기금을 끌어다 쓸 궁리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만만한 게 외국환평형채권인 모양인데 지금처럼 금융시스템이 위태로워지는 시기에 그것도 외환위기로 그야말로 국난을 겪었던 한국 정부가 선택할 방법인지 의아스럽다.

이미 국난이라던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쁜 세수부족을 일으키고 있는 정부가 하는 그런 선택은 위태롭기만 하다. 그러자고 장차의 큰 부담이 될 엔화 외평채를 서둘러 발행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지금 한창 약세인 엔화가 상환시기인 5년 뒤에도 여전히 약세일지 아니면 현재 되살아나는 일본경제를 봐서는 강세로 돌아설지 제대로 따져보기는 했는지 묻고 싶다. 더구나 2년 전 발행한 달러 외평채와 비교해 2배 가까운 스프레드를 얹은 발행임에도 성공적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정부 모습은 불안을 키워줄 뿐이다.

연기금을 정부 주머닛돈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다. 그것도 불과 몇 달 뒤의 경제상황 예측조차 제대로 못하는 기재부가 나서서 그런다는 사실 때문에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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