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만 기다리면 된다?
경기회복만 기다리면 된다?
  • 홍승희
  • 승인 2003.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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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하반기에 시작돼 올 연초까지 국내 경제를 휘청거리게 했던 카드채 문제가 LG카드의 심각한 자금경색과 함께 다시 불거지고 있다. 당시의 임시 미봉책으로 한동안 잠잠해진 듯 보였던 카드채 문제는 현재 LG카드 1개사만 해도 22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채권 규모로 채권단을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LG카드 한 곳에서 터졌지만 실상 이런 과다 부실채권과 자금경색 상황이 LG 1개사 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개인신용불량자 수가 별반 줄어들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부실자산을 대거 끌어안은 신용카드사들이 새로운 자본 투입없이 단지 채권발행만으로 자금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겨오다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어느 회사라 해도 크게 상황이 다를 것은 없는 것이다.

카드사의 자금 운용 양태를 보면 50~80년대 곧잘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곤 하던 ‘계’의 문제가 제도권에서 재현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의 보도에 따르면 한 명의 계주가 작심하고 몇 개에서 몇십개 까지의 계를 조직하고 자신의 돈은 한푼도 넣지 않은 채 이쪽에서 자금 빼서 저쪽으로 돌리는 식으로 자금을 끊임없이 순환시켰다.

물론 그 와중에 계주는 이익을 빼내어 사용했고 그런 통로가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해 더 많은 계를 조직해가며 규모를 키워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르면 갑자기 자금순환이 멈추고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계주는 도망가고 그 계주가 운용하던 숱한 계가 일시에 깨지며 수십 혹은 수백명의 피해자가 발생하곤 했다.

그러나 계는 어디까지나 전통사회에서의 개인간 신용을 바탕으로 한 사금융의 영역이었기에 그 피해가 제아무리 크다해도 국가 경제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제도금융권에서 당당히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앉은 카드사들의 경우 그 덩치만으로도 무너지면 엄청난 파장을 몰아올 수밖에 없다.

카드사들은 애당초 그다지 큰 투자를 하지 않은 채 자금 운용기술 만으로 막대한 금융자산을 형성했다. 자금수요가 커지면 밑돌 빼서 위에 얹는 방식으로 그들의 성을 축조해왔다. 그리고 지금 그 한계상황에 직면해 성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껏은 성이 흔들리더라도 지렛대 몇 개 버텨놓고 유지시킬 수 있었지만 이제는 빼냈던 자리의 밑돌을 다시 끼워넣지 않는 이상 더 버텨봐야 붕괴를 면하기는 어렵다.

채권단은 지금 LG카드에 대해 협조융자를 하느냐 마느냐로 고민을 하고 있다. 채권단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자금회수를 더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겠지만 자칫 부실채권 규모만 더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지가 더 고민거리일 것이다. 그렇기에 오너의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 LG그룹 오너는 물론 오너 일가의 지분까지 담보로 제공하고 그룹 오너의 개인보증까지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LG카드측은 총 발행주식의 5.46%인 오너 개인지분만 공동담보로 제공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금융기관 입장에서 보자면 실상 회수불능이라고 판단되면 빨리 불량채권으로 처리, 상각하는 게 피해를 줄이는 지름길일 것이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회수 가능성 여부는 앞으로 LG카드가 얼마나 자력으로 버텨나갈 수 있느냐에 대한 판단에 따라 다를 것이다. 개인신용불량자들이 언제쯤 상환능력을 가질 수 있겠느냐는 판단과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LG카드 측은 채권단이 2조원의 협조융자만 해주면 내년 상반기까지 버틸 수 있고 그러다보면 내년 경기회복에 따라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불량채권 회수가 가능해져 회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겨우 경기는 회복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것도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그 경기회복 기운을 실감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기운이 중소기업으로, 나아가 개인들에게까지 퍼져나가야 비로소 개인신용 회복이 가능해진다. 과연 6개월만에 거기까지 미칠 수 있을 것인가.

전례로 보자면 아무리 현재의 경기가 탄탄한 회복 기류를 탔다 하더라도 국민 개개인에게까지 미치는 데 1년은 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LG카드 측은 이번에도 또다시 위기국면만 넘기고 보자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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