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토털 설루션 기업 요구되는 시대···인수합병으로 세계 진출 가능"
SK이노베이션 주주, 합병 비율 적절성 의문·KKR 동의 관건 될 것
[서울파이낸스 김수현 기자] SK이노베이션이 SK E&S와 합병으로 자산 100조 규모 에너지 공룡의 탄생을 예고했다. 전문가는 글로벌 기업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기반을 마련하고, 통합 설루션이 요구되는 시대 상황에서 합병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합병비율로 인한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지난 17일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각자 이사회를 통해 양사의 합병 안을 통과했다. 이번 합병으로 합병사는 자산 100조, 매출 88조원의 아시아 태평양 최대 민간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합병 형태는 기존 사업뿐만 아니라 조직, 인력의 구성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사내독립 기업(CIC) 방식으로 진행된다.
SK이노베이션은 1999년 가스 사업 부문을 분할하며 SK E&S을 출범했다. 이후 SK E&S는 액화천연가스의 밸류체인을 완성하며 국내 1위 민간 LNG 사업자에 등극했다. 이번 합병은 분할된지 25년 만의 재결합으로, 합병 회사는 전통적인 에너지로 대표되는 석유, LNG뿐만 아니라 미래 에너지로 분류되는 재생에너지, 수소,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에너지 사업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이전에는 별도의 전력 회사를 통해 사업을 하는 것이 낫다는 전략적 판단이 있었다면, 현재는 전통적인 에너지와 미래 에너지 더 나아가 배터리까지 아우르는 종합 토털 설루션 기업의 탄생이 요구된다"라며 "이번 합병은 글로벌 에너지 기업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발맞췄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석유, 천연가스, 배터리 등이 다른 분야 같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운영 방식을 보면 석유, 천연가스를 기반으로 돈을 벌어 재생에너지와 배터리 등 미래 산업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인다"라며 "현재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결국은 덩치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이기에 합병사 역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의 엑슨모빌, 영국의 브리티시 페트롤륨(BP), 유럽의 셸 등 전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들이 서로 인수 합병으로 몸집 불리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석유·가스 기업인 엑슨모빌은 1999년 엑슨과 모빌 기업의 합병으로 설립됐다. 지난 5월에는 경쟁사인 파이어니어내츄럴리소시스와 600억 달러 규모의 인수 딜을 추진하며,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의 소액주주들은 합병 비율 적절성에 의문을 품고 반발을 지속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비율은 1대 1.1917417로, 회사 측은 기업가치를 근거로 산출됐다고 설명했다. 상장법인은 합병가액으로 기준시가를 사용하지만 기준시가가 자산가치보다 낮다면 자산가치를 사용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로, 자산가치 대비 주가가 저평가됐다. 이에 따라 자산가치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지만 SK이노베이션은 원칙을 따랐다.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이번 합병 추진에 대해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각자 사업체제로 운영될 예정임에도 이번 합병 추진 과정에서 그룹 측이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흑자경영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SK E&S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임직원들에 대한 동의 절차는 없었다"면서 그룹 수뇌부에 대한 반발이 상당하다는 후문이다. 향후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과정에서 자칫 불협화음이 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다음 달 27일에 합병 승인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총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한다면 합병 법인이 11월 1일 공식 출범하게 된다. SK이노베이션의 주주와 SK 환전환우선주(RCPS)를 보유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KKR의 동의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KRR은 3조1350억원 상당의 RCPS를 보유 중인데, 투자금 중도 상환을 요구한다면 도시가스 자회사 등을 넘겨줘야할 수도 있다고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