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공급 위축 우려·가점제 물량 감소·시세 차익 노리는 수요 등이 원인
만점 통장 다수 등장···20억 지불 능력되는 15년 무주택·6인가족 현실성 없어
높은 청약 경쟁률·분양가에 청약 통장 해지 속출···1년 새 가입자 약 35만명↓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최근 아파트 청약을 둘러싼 수요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며 청약 무용론이 재등장하고 있다. 아파트 분양가가 연일 치솟는 가운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청약 경쟁률에 허탈함을 느끼는 수요자들이 많고, 청약에 당첨되기 위한 조건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피곤함이 크다는 평가다.
5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달 말 1순위 청약을 진행한 '디에이치 방배'는 650가구 모집에 5만8684명이 신청하면 평균 경쟁률 90.3대 1을 기록했다. 가장 경쟁률이 높았던 전용 59㎡B는 63가구 모집에 1만4684명이 몰리며 233.1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달 분양된 △'라체르보 푸르지오 써밋'(1순위 평균 경쟁률 240.8대 1) △7월 분양된 '래미원 원펜타스'(1순위 평균 경쟁률 527.3대 1) △6월 분양된 '강변역 센트럴 아이파크'(1순위 평균 경쟁률 494대 1)도 상황은 비슷하다. 올해 1~8월 일반분양된 서울 아파트 평균 청약 경쟁률은 140.66대 1로, 세 자릿수를 기록하는 것은 이제 흔한 모습이 됐다. 지난해 상반기 51.86대 1, 하반기 58.31대 1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경쟁률이 3배 이상 치열해진 것이다.
경쟁률이 치솟은 원인은 다양하지만, 먼저 강남권의 경우 분양가 상한제 적용으로 분양가가 현재 주변 시세 대비 저렴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수요가 몰린다. 그러나 분상제 비규제지역에서도 세 자릿수 경쟁률이 연일 나오고 있어, 서울 신축 공급 위축에 대한 우려에 미래 수요가 대거 몰렸단 분석이 나온다.
정부 정책 변화 탓도 일부 있다는 평가다. 정부는 '무주택 기간' 등 가점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청년층을 배려하기 위해 2년 전부터 '무작위 추첨' 물량을 늘려왔다. 기존엔 전용 85㎡이하(투기과열지구)는 가점제 100%로 당첨자를 뽑았으나, 현재 59㎡~85㎡ 이하는 최소 30%에서 최대 60%를 추첨으로 뽑는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9억원 초과 주택에서도 특별공급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신생아 특공 등의 범위를 넓히면서 가점제 물량이 더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몇 년 전만 해도 청약 통장 가점 60점 중반 수준이면 당첨이 됐던 서울 아파트 청약이 현재는 70점을 훌쩍 넘어야만 당첨 기대를 할 수 있게 됐다. '디에이치 방배' 전용 59㎡ 청약에는 만점인 청약 통장이 사용됐다. 최고 가점 79점으로, 6인 가족이 15년간 무주택으로 버텨야 나올 수 있는 점수다.
만점 청약 통장도 무조건 당첨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청약제도상 청약 가점이 같을 땐 가입 기간을 따져 당첨자를 가르게 되는데, 취재 결과 2003년 청약통장에 가입한 69점 만점자는 부양가족 수에 밀려 디에이치 방배 예비 당첨번호 7번을 받았다. 2006년 청약통장에 가입한 만점자도 가입 기간에 밀려 예비 100번대 중반을 받아 사실상 당첨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일각에서는 청약에 당첨되기 위해 위장 전입 등 편법을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앞서 분양된 래미안 원펜타스 당첨자 중에서도 만점 통장 보유자가 여럿 등장하고, 최저 당첨 가점도 137㎡ B형(69점) 1개 평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70점을 넘기면서 높은 당첨 커트라인을 보였다. 특히 84㎡ 분양가가 23억원 수준인데, 이 자금을 마련할 능력이 되는 당첨자가 본인 제외 부양가족 5~6명을 데리고 15년간 전·월세를 전전한다는 게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잇따라 부정청약 의혹이 일자 국토교통부는 즉각 하반기 분양단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이겠다고 나섰다. 이전에도 청약을 위해 따로 사는 자녀나 부모님을 함께 사는 것처럼 주소를 이전하는 편법 등이 적발된 사례가 있어서다. 또 지난달 294만명이 몰리며 청약홈 사이트가 마비되며 무순위 청약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조만간 청약 제도 개선에도 나서겠다 밝힌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청약 시장이 과열되고 있어 무순위 청약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맞는지 문제의식을 갖고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다"라며 "다만 1순위 등 가점 제도도 개편될지는 아직 미지수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청약시장이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어 하는 실수요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시세 차익을 기대하는 현금 부자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서울 아파트의 신혼부부 특공마저 10억원이 훌쩍 넘는 상황에 신축 아파트 청약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젊은 세대는 높은 청약 경쟁률에 한 번 더 허탈감을 느낀다.
이는 청약통장 가입자 수에서 알 수 있다. 7월 말 기준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 수는 총 2548만9863명으로, 한달 새 1만6526명이 청약 통장을 해지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34만7430명 감소한 수치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지방은 청약통장이 없어도 신축 아파트 계약이 가능하고, 서울과 수도권은 높은 청약 경쟁률과 분양가에 청약을 포기해 이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고 짚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현재 아파트 청약은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하기에 엄격한 요건으로 공정성만 유지하고 있는 셈"이라며 "현행 청약제도에선 일반분양 당첨이 어렵지만, 주택을 우선 공급받아야 하는 대상을 중심으로 특별공급 등의 유형과 물량이 늘고 있어 일단 청약통장 유지는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