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가이드] "게임에는 낭만이 있다. 가끔 그것은 현실로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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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BIFF 상영작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게임으로 자유를 얻은 선천성 근위축증 환자의 이야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사진=블리자드)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사진=블리자드)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게임팬들 사이에서 블리자드는 '예전만 못한 게임사'다. 과거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의 영광을 누렸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MMORPG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회사가 블리자드다. 그러나 지금 '스타크래프트'의 아성을 뛰어넘는 게임은 여럿 등장했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아저씨들이나 하는 게임이 돼버렸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속칭 '와우(WOW)'는 그만큼 오래된 게임이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이 게임은 2004년 11월 미국에서 처음 출시됐으며 우리나라에는 2005년 1월에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다. 곧 있으면 '와우'가 나온지 20년이 된다. 

오래된 게임인 만큼 이 게임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특히 온라인 게임이지만, 여러 명의 사람들이 협업해 던전을 돌고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 만큼 그 이야기는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서 상영된 영화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년 가까이 이어진 '와우'의 역사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는 노르웨이에 사는 마츠라는 소년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그는 선천성 근위축증을 앓다가 20대에 세상을 떠난다. 마츠는 죽기 전 부모에게 자신의 블로그 비밀번호를 남긴다. 부모는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마츠의 죽음을 온라인 세상에 알린다. 그러자 마츠의 죽음을 애도하는 수십개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때부터 영화는 부모도 몰랐던 마츠의 인생을 되짚어간다. 

마츠는 어릴 때부터 선천성 근육위축증을 앓았다. 이는 희귀병이며 치료방법도 없다. 10대가 되면서 마츠는 휠체어에 의지하기 시작했고 밖에서 노는 대신 집에서 게임을 하는 시간이 많았다. 부모는 마츠가 또래 아이들처럼 나가서 놀거나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웠길래 게임을 하는 것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던 마츠가 10대에 시작한 게임이 '와우'다. 그가 '와우'에서 보낸 시간이 총 8년, 2만 시간이라고 하는 내용으로 봤을 때 첫 출시부터 쭉 게임을 해온 것이다. '와우'에서 마츠의 닉네임은 '이벨린'이다. 인간 도적으로 주로 스톰윈드에서 생활한다. 영화는 마츠가 2만 시간동안 활동한 게임 로그를 바탕으로 게임 속 그의 삶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한다. 

현실세상에서 손가락 말고 움직일 수 없었던 마츠는 게임 속에서는 숲을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려 지낸다. 그는 친구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연인을 만나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그의 영향력은 게임뿐 아니라 게임 밖으로도 이어진다. 

예를 들어 사춘기 아들과 벽이 생긴 엄마에게는 아들과 함께 게임을 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부모의 반대로 게임을 할 수 없게 된 연인을 위해서는 직접 (컴퓨터로) 편지를 써서 연인의 부모에게 보낸다. 그렇게 마츠는 게임 속의 연인을 다시 만난다. 

마츠의 게임 속 삶에는 우여곡절과 갈등도 있었지만, 결국 그는 게임 속 동료들에게 최고의 친구이자 멋진 사람, 사랑스러운 연인으로 남았다. 마츠는 온몸이 마비돼 움직일 수 없었지만, 게임 덕분에 아프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다가 떠났다. 마츠의 장례식에는 그가 활동하던 길드의 대표자 몇 명도 참석했다. 거기에는 마츠의 게임 속 연인도 있었다. 

길드를 만들고 여럿이 접속해 함께 공격대를 다니는 '와우'의 특성상 게임 속 동료들은 현실의 동료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게임 길드에서 만나 결혼까지 이어지는 커플도 종종 있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게임이 삶에 영향을 준 여러 이야기들 중 특별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속 마츠. (사진=넷플릭스, 부산국제영화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속 마츠. (사진=넷플릭스, 부산국제영화제)

'와우'를 오리지널부터 하다가 몇 년 전 그만둔 본 기자도 영화를 보면서 게임 안팎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온라인 게임이 방구석에서, 혹은 PC방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는 것이지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지냈고 그 관계는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적어도 마츠에게 '와우'는 몸이 건강한 다른 사람들의 '와우'보다 조금 더 특별했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게임 질병코드 등록을 두고 격론을 벌이는 정부 관계자, 가챠 중심으로 수익성만을 내세운 게임을 만드는 게임 제작사에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초창기 '와우'는 탄탄한 세계관과 잘 만든 캐릭터, 스토리텔링으로 몰입감을 주는 명작게임이었다. 

잘 만든 게임은 이용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그 경험은 게임을 넘어 게임 밖에서도 유익한 효과를 줄 수 있다. 게임 밖에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병들어서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게임이 인간관계를 맺는 출구가 될 수 있다. 당연히 그 관계가 오프라인에서도 유익하게 작용할 수 있다. '와우'를 열심히 하다가 백종원을 만나 그의 회사에 취직한 어느 이용자의 미담은 비단 판타지만은 아니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많은 게이머들의 심장을 뜨겁게 하고 눈가를 촉촉하게 할 것이다. 방구석에서 게임만 했던, 게임만 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청년의 비범한 인생은 게임이 주는 가장 큰 감동이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지옥' 시즌2와 같은 날 공개돼 큰 주목을 받기 어려울 수 있지만, 시간이 닿는 시청자에게 감히 추천하고 싶다. 특히 아제로스 대륙에서 펼쳐진 영웅들의 대서사시를 기억하는 이용자들, 검은바위 용광로의 뜨거운 불길과 얼음왕관 성채의 맹추위, 서부몰락지대 해안의 멀록 울음소리와 눈부시게 떠오르는 새해 첫 날의 일출을 기억하는 '와우저'들은 '지옥' 시즌2보다 이 영화를 먼저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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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우 2024-10-12 13:36:44
호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