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된 시장 '고민거리'···고금리에 로컬 은행과의 경쟁 밀려
성장 가능성에도 속타는 후발주자···신규 인허가 '감감무소식'
[서울파이낸스 (베트남) 신민호 기자] "외국계 은행 1위라는 타이틀에도, 정작 시장점유율은 2%가 안됩니다. 이젠 외국계은행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로컬은행들과 경쟁해야 할 시점입니다."(강규원 신한베트남은행 법인장)
해외 진출을 노리는 국내 금융사에 베트남은 여전히 매력적인 곳이다. 1억명을 웃도는 인구 중 70%가량이 생산가능인구로 젊고 역동적인 나라가 베트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세계경제가 2%대 성장률을 보인 와중에도 베트남은 5%대 성장률을 달성했다. 올해에는 6%대 성장세가 점쳐지는 등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것으로 평가된다.
소비 구매력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하루 최소 11달러를 소비할 수 있는 베트남 중산층은 2000년 전체 인구의 10%미만에 그쳤지만 현재 40%까지 늘었다. 오는 2030년엔 전체 인구 중 중산층 비중은 75%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인건비 역시 상대적으로 저렴할 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진심이라 '기회의 땅'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와 경제적·문화적 유사성이 높다는 점도 현지 진출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최근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베트남의 높은 경제 성장세를 타고 적잖은 성과를 거뒀지만, 더 이상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신남방 정책 일환으로 베트남의 문을 두드린 많은 금융사들이 여러 장벽에 막혀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이뿐만 아니라 은행 외에도 증권, 보험, 카드 등 다수의 국내 금융사가 앞다투어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한정된 파이를 놓고 '제로섬' 게임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더 이상 블루오션이 아닌 레드오션 시장이 된 것이다.
특히 국내 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둔화되며, 한국의 대(對)베트남 해외직접투자(FDI) 규모는 올해 상반기 기준 14억달러로 전체 4위까지 하락했다. 1위인 싱가포르(약 56억달러)나, 2·3위인 일본·홍콩(각 17.3억달러)과도 격차가 벌어진 상태다.
강규원 법인장은 "국내 성장의 한계로 해외에 진출했는데, 한국계 기업에 대한 금융적 공급이 늘어나면서 레드오션화되고 있다"며 "현지인이나 현지 기업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지 않으면 사실상 성장판이 닫힐 수 있단 위기감이 있다. 이는 후발주자로 들어온 금융기관들이 더 크게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상가상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 대한 베트남 현지 은행들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낮은 금리를 앞세운 현지은행과의 경쟁에서 속절없이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단적으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5.5%로 유지하고 있던 당시, 한국계은행의 대출금리는 5% 중후반에서 많게는 6%대까지 형성됐다.
반면 베트남의 경우 달러 예금에 대한 이자율을 0%로 유지하면서 달러를 보유한 은행들의 조달금리 역시 0%대였다. 여기에 우량기업에 대해선 우대금리까지 적용돼 로컬은행들의 대출금리가 3% 초중반까지 낮아지면서, FDI 중심인 한국계 은행들의 타격이 컸다는 설명이다.
김진선 KB국민은행 호지민 지점장은 "베트남 정부가 신용 확대 주문을 강하게 하면서 알짜기업에 대한 로컬은행들의 니즈가 커졌다"며 "로컬은행들이 초저금리를 앞세워 한국 기업들의 대출수요를 뺏어갔지만, 금리 측면에서 경쟁이 안되니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임인곤 베트남우리은행 부행장 역시 "한국계 기업시장의 파이가 커질 여지가 적은데, 그마저도 로컬은행들에 조금씩 뺏기는 형국"이라며 "결국 한국계 기업만 타깃해선 한계가 명확하다. 로컬기업과 리테일 쪽으로 확장하지 않으면 성장 여지가 없다"고 전했다.
당국의 규제 역시 애로점으로 꼽혔다. 급성장하는 시장 특성상 법제도가 정비되고 있지만, 여전히 비효율적이고 경직된 면이 적지 않아서다.
특히 최근 몇 년새 법인 라이선스가 나오지 않으면서 후발주자들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앞서 법인 전환한 신한·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한국계 은행들의 경우 법인 전환 이슈에 가로막혀 몇 년째 추가 지점은 언감생심인 상황이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선 현지 금융사 인수를 통한 법인 전환이 불가피한데, 매물 후보군으로 손꼽힐 만한 금융사의 경우 부실 정도를 커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김진선 지점장은 "베트남 당국에서 몇 년째 법인 라이선스를 내주지 않아 고민이 크다"며 "현재 지분투자나 지점규모를 키우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현재 상태론 발전 여지가 극히 제한적이다"라고 전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베트남의 성장세가 견조하기 때문에 향후 전망 자체는 긍정적이라는 게 이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특히 글로벌 금리인하기에 진입하며 금리 경쟁력 측면에서 로컬은행에 뒤쳐졌던 한국계 금융사들이 반등할 여지가 커졌다는 평가다.
임인곤 부행장은 "하노이의 경우 해외투자가 늘고 있고, 호치민 역시 경공업 중심이다 보니 글로벌 경기 회복의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억눌려진 수요가 회복하면서 실적 등으로 연결될 것이며, 당국 역시 신용을 계속 풀고자 하고 있다. 당분간 성장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강규원 법인장 역시 "베트남은 정부의 강력한 FDI 유치 의지, 풍부한 인력기반 등에 힘입어, 동남아시아 국가 중 꾸준하게 높은 경제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며 "특히 최근 화두로 떠오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있어 유력한 대안으로도 부상했다. 여전히 높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닌 시장이라 생각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