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위4구역‧방화6구역 등 곳곳 시름 중
정부 대책도 급등한 공사비 해결 한계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곳곳에서 공사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그나마 부동산 경기가 살아났다는 서울에서도 조합과 시공사가 의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계약이 아예 해지되는가 하면 공사 중단 현수막이 붙은 상황이다. 가뜩이나 불황인 건설경기 속에 뚜렷한 해법이 없는 공사비 문제로 인해 정비사업 위축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공사비 갈등으로 지난 18일 공사가 중단됐던 서울시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사업이 일주일 만인 24일 공사를 재개했다. 조합과 기반시설을 담당했던 시공사 3곳(동남공영, 중앙건설, 장원조경)이 공사비 막판 협상을 통해 210억원 증액에 합의함에 따른 것이다. 공사 재개로 다음달 27일로 예정된 입주도 계획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22년에도 올림픽파크포레온은 6개월간 공사가 중단된 바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조합의 설계 변경 요구까지 맞물리면서 건설사가 비용 증액을 요구했지만, 조합이 공사비 증액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다.
박승환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장은 "현재 공사비 협상을 타결해 기반시설 공사 재개, 진행 중이고 입주는 예정대로 차질없이 진행될 계획"이라며 "재건축 사업 기부채납 시설인 둔촌1동 주민센터 신축 청사가 이달 중 준공 완료된 만큼 입주 시기에 맞춰 전입신고 등 관련 행정 업무를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임시 운영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입주 직전까지 공사비 갈등을 겪은 올림픽파크포레온과 같이 사업에 먹구름이 드리운 사업장은 한둘이 아니다. 성북구 장위동 '장위 자이레디언트(장위4구역)' 현장에는 공사중단을 예고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시공사인 GS건설은 올 초 772억원의 증액을 요구한 뒤 7월 기준 483억원까지 조정했으나 여전히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GS건설이 시공을 맡은 '광명 철산주공8·9단지 재건축'도 갈등이 불거질 전망이다. 회사는 조합에 최초 시공사 선정 당시인 2019년 추정공사비 8776억원 대비 8%에 해당하는 710억원의 공사비를 증액해 줄 것을 요청했다. 조합은 별도 법률 검토자문, 전문건설사업단의 검토 결과를 받아 시공사와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인데 최악의 경우 공사가 멈춰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인근 지역에 GS건설이 시공을 맡은 철산주공10·11단지(철산자이 브리에르, 총 1490세대)와 광명 제1R 재개발(광명 자이더샵포레나, 총 3585세대)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GS건설 관계자는 "착공 이후 코로나19, 동유럽, 중동의 전쟁 등으로 인한 공사 물가 및 인건비 등 제반 비용의 폭등으로 어려운 상황이며, 성공적인 사업 수행을 위해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인력 및 자원을 투입해 노력 중"이라면서도 "그러나 공사를 원활히 마무리 하기 위해 현실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서구 방화6구역은 지난해 4월 이주·철거를 완료했으나 공사비 인상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 1년 넘게 사업이 멈춘 상황이다. 서울시에서 공사비 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코디네이터까지 파견했으나 조정에 실패해 결국 시공 계약 해지 수순을 밟고 있다. 조합은 지난달 29일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과의 계약을 해지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이처럼 오른 공사비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도 찾지 못한 데 있다. 실제로 건설원가관리 전문기업 터너앤타운젠드코리아가 시행사·정비조합·기업·자산운용사 등 발주자 2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발주자들이 최근 5년간 진행한 74건의 프로젝트 중 52건(70%)에서 건설사가 총 공사비의 10% 이상을 물가상승 보상금으로 요구한 것으로 집계됐다. 터너앤타운젠드코리아 측은 "예전의 공사비로 예산을 책정하면 실제 공사비와 오차율이 크게 발생할 수 있다"며 "프로젝트 기획 단계부터 예산을 제대로 검토하고 관리하는 것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가 이달 초 자잿값, 인건비, 공공조달 등 공사비 3대 안정화 방안까지 마련하고 나섰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연평균 8.5% 수준이던 공사비 상승률을 내년까지 2% 이내 수준으로 관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연 4%선을 유지하도록 지원한단 방침이지만 당장 오른 공사비를 놓고 갈등이 깊어진 사업장에선 별다른 효과가 없는 모습이다. 아울러 집값이 상승세로 돌아서고 입주장에도 전월세가격이 치솟는 상황에서 공급 물량이 부족해 시장 불안을 더 가중시킬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사 관계자는 "2022년부터 여러 대내외 이슈로 공사비 문제가 불거졌고 인건비가 가장 급등했는데 근본적인 해결은 결국 '예산' 문제로 귀결되다보니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당시 착공에 들어간 대부분 사업장들이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제대로된 현실화 방안이 수립돼 어려움에 처한 건설업계가 정상적인 공사비를 바탕으로 안전하고 고품질의 시공 목적물을 완성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공사비 갈등 해결을 위해서 정확한 금액 산출이 이뤄져야 하고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양측 간 이견을 좁히기 위해선 투명성을 높여야 협상이 가능해질 것"이라면서 "공사비의 경우 수입 원가 등 대외 경제나 변수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정부 대책으로는 이미 급등한 공사비를 안정화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