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시간차 공격'에 관한 一考
<기자칼럼>'시간차 공격'에 관한 一考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4.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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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에 시간차 공격이라는 게 있다. 공격 시차를 조절함으로써 상대방 수비를 교란시키는 기술이다. 키가 작고 파워가 부족한 한국 선수들이 유용하게 쓰는 기술이라고 한다.

정치에서도 시간차 공격이 있다. 상대방에 치명적일 수 있는 정보를 취득하고서도 때를 기다리며 공개 시기를 늦추는 행위를 빗대는 표현이다. 현대 민주주의가 여론정치, 또는 매스미디어 정치로 불릴 정도니 정치인들에 있어 시간차 공격은 하나쯤 가져야 할 협상용 카드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 조재환 의원이 불법 대선자금 의혹으로 굿머니 사건을 재점화시켰다. 굿머니 사건이란 대부업체 (주)굿머니가 지난해 초 은행으로부터 544억원 불법 대출을 받은 사건을 일컫는다. 대출 수법은 룸살롱 마담이 고액 대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 일반 가정주부 320여명을 마담으로 둔갑시켜 보건증을 발급받게 하고 편법으로 1억원∼2억원씩 대출받게 했다.

단순 불법대출 사건으로 볼 수도 있으나 문제는 이렇게 모집된 돈이 일부 노무현 캠프 대선자금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부터. 이 증언은 지난해 9월 국정감사 때 굿머니의 모집책이었던 김진희씨(31)로부터 나왔다. 이 증언을 바탕으로 최근 조재환 의원은 열린우리당 신계륜 의원을 지목하며 굿머니 사건을 對與 공격용으로 다시 전면에 부각시켰다.

사건의 시시비비를 떠나 이 사건은 이미 작년 국정감사 때 파헤쳐질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조 의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작년 9월 정무위 국정감사 당시 많은 기자들은 굿머니 관계자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된 것을 보며 뭔가 큰 사건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 분분했었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을 준비하던 시기여서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조 의원은 김진희씨에게 일반적인 사항만을 질의했을 뿐 진실을 파헤치려는 진지한 시도는 하지 않았고 일종의 해프닝 성격으로 몰아나갔다. 그리고 굿머니 사건은 그야말로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던 것이 총선을 앞두고 이 사건은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며 일종의 게이트로 비화됐다.

민주당 조 의원의 시간차 공격은 이로써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는 별도의 문제로 남는다.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시간차 공격은 전략과 전술 차원에서 일종의 전술로 인식하고 효율성 차원에서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것이 당시 국정감사를 바라보던 기자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과연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으로부터 독립하지 않았어도 이 사건의 진실이 국민에게 알려질 수 있었을까. 조 의원이 이 사건을 터뜨린 진의가 의심스러워진다. 도대체 국회의원의 본 임무란 무엇인가. 당에 충성하는 것? 재선하는 것?

한 사람의 유권자로서 판단컨대 국회의원이란 자리는 민의를 잘 전달하고 정부가 하는 일을 잘 감시하는 자리일 것이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라는 말도 진리이겠지만 언제 밝혀지느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어제의 친구가 적이 됐다고 해서 까발리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묻어버리는 관행은 전략과 전술을 떠나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관행이 정치권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국회의원도 수입하자는 恨 섞인 목소리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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