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쓰리 케어'(three care)...이제 그만!
<기자칼럼>'쓰리 케어'(three care)...이제 그만!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4.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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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 쓰리케어(three care)란 속어가 있다. 재경부 출신 인사가 금융기관 주요 요직을 세 번 이상 해 먹는 관행을 빗댄 말이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아무 관료나 세 번(three)의 보살핌(care)을 받는 건 아니다. 전제 조건이 있다. 재경부에 절대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 능력도 받쳐줘야겠지만 그보다 충성이 우선이다.

이 말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현재도 금융권 깊숙이 곳곳에 포진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은행, 예보는 물론이고 거래소와 코스닥, 신용관리기금, 기보에 각종 국책은행, D보험사 등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이들은 음으로 양으로 서로서로 보이지 않는 끈을 잡고 회전목마처럼 주요 금융기관을 순회한다.

노무현 정부도 이런 속어를 들었던 것일까.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이 재경부출신 낙하산 인사에 철퇴를 선언하고 나섰다.

한두 번은 몰라도 산하단체장이나 협회장, 그리고 금융기관장 등을 돌아가며 서너 번씩 거치는 것은 문제다. 민간 CEO를 적극 영입하겠다.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환영할 일이다. 관치금융이란 말이 무감각하다 못해 상식이 돼 버린 상황에서 이런 조치는 개혁의 일환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선의의 피해자일 수 있는 현직의 젊고 유능한 재경부 관료들은 선배들의 오점을 덤터기쓰는 꼴이 될 수 있지만 이들에 대해 열정과 능력을 기준으로 선별 인사를 잘 실시한다면 역차별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정 수석의 이러한 발언은 곧바로 금융계에 직격탄이 돼 날아가고 있다. 당장 다음달 선임될 예정인 우리금융 CEO 인사가 큰 변화를 맞을 조짐이다. 윤증현 전 아시아개발은행 이사,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 등 관료 출신인사들이 유력 후보군에서 멀어지는 반면, 민간 인사들이 급부상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변화는 정 수석이 우리금융회장 및 부회장, 우리은행장, 광주·경남은행장 6명을 부른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인사 논의가 이번이 처음이거나 생소한 것은 아니다. 신정부 출범 때마다 인사혁신은 주창됐지만 매번 좌초하고 말았다. 개혁인사 뒤에는 매번 관료형 인사가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그 때마다 제기된 논리는 탁월한 관리능력과 높은 전문성이었다. 개혁에는 혼란이 따르게 마련이고 그 혼란을 틈타 구관이 명관이라는 식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전형적인 논리다.

한 예로 재경부 인사가 은행장을 독식하던 기업은행은 90년대말 창사 이래 처음 내부인사 승진으로 CEO를 맞았던 예가 있지만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외환위기 탓도 있겠지만 비관료로서의 한계가 크게 작용했다는 후평이다. 그래서인지 은행 직원들조차 원활한 업무 진행을 위해 재경부 인사를 선호하는 분위기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금융환경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했다. 가히 역사적인(historic) 일이라 할 만하다. 기존 행정편의주의적 제도와 규제들이 모두 세계 보편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져야 하고 국내 은행들도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큰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예상하고 있는 때문인지 재경부도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외부 자극이 내부 변화를 유도하는 형국이다.

이런 시대에 쓰리케어 충성파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은행 이덕훈 행장은 제일·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해 씨티은행에 대항하겠다고 나섰지만 기자가 보기에는 허장성세내지는 일종의 언론플레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내 은행들이 기나긴 금융 구조조정을 끝내고 진정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의식과 제도의 개혁이 병행돼야지 덩치만 키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임기가 채 30일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이 행장이 이처럼 발언하는 것은 오히려 연임을 의식한, 재경부에 러브콜을 보내는 몸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과거 LG카드 사태 때도 이 행장은 누구의 지시를 받은 모양 우리은행이 LG카드를 인수하겠다며 큰소리쳤지만 결과는 흰소리에 그쳤다. 덩치는 물론이고 그 어떤기준으로 보더라도 제일·외환은행 인수는 LG카드보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를 계기로 국내 금융기관 인사들은 한 번쯤 심사숙고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진정 씨티은행에 대항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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