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과 신용
금융기관과 신용
  • 홍승희
  • 승인 2004.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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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을 잃은 금융기관이 성장 발전하기 어려울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고객의 신용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금융기관 스스로의 신용도를 높이는 일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근래 한국 사회에서 금융기관들이 스스로의 신용에 먹칠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대주주부터 일선 직원들에 이르기까지 금융기관의 신용 까먹기에 나선이들의 스펙트럼이 꽤 넓다.

금융기관 직원들의 횡령 등 근래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금전사고는 고객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금융감독원 발표로는 금융사고 가운데 횡령사건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2000년 384건, 2001년 405건, 2002년 383건, 2003년 496건으로 2002년 잠시 주춤한 것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사건 발생건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우리은행의 400억 횡령사건, 동부생명의 45억 횡령사건 등 덩치 큰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처럼 드러난 사건 외에 금융기관 내부적으로 소문없이 처리하고 끝낸 사건들이 적지 않다는 소리도 들린다. 신용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발생 사실 자체를 쉬쉬하는 관행 때문에 감춰진 사건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는 적자가 발생한 증권회사에서 대주주들이 앞장서서 고율배당을 했다고 해서 말썽이다.


과거에도 금융기관의 횡령사고 등은 종종 발생했다. 직접 돈을 다루는 직원들 입장에서 유혹을 느끼기 쉽고 따라서 가벼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만 요근래 들어서는 보다 계획적인 거액 횡령사고가 빈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고객 입장에서 보자면 소액대출에도 과도할 정도로 신용평가에 엄격한 금융기관이 이런 헛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왜 스스로에게는 그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지, 그리고 그 손해의 궁극적 보전은 어떤 돈으로 하는지 의문을 가질만하다.

갈수록 예대금리 격차는 벌어져가는데 그 이유가 이런 금융기관의 내부적 과실에 의한 손실 보전의 필요가 커졌기 때문은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다.

게다가 적자를 본 금융기관 대주주들이 고율배당에 앞장서는 상황은 꽤 황당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소액주주들과 달리 적어도 대주주라면 기업으로부터 이익을 챙기는 권리 못지않게 기업을 지속성장시킬 책임도 있다는 것이 대중들의 상식이다.

그런데 적자를 내고도 배당은 챙겨야 되겠다고 한다. 물론 경영간섭을 하지 않은 대주주들 입장에서 경영과실에 대한 책임을 지기 억울할 수도 있지만 그 경영자 역시 대주주들 손으로 뽑아 세운 것이라면 당연히 손실분담을 할 의무는 있는 것이다.

그런 의무는 외면한 채 금융기관으로서의 신용을 스스로 깍아먹고 나서는 행태는 최근 금융기관 민영화와 함께 나타난 새로운 현상인 듯 싶다. 증권회사야 원래 민간자본으로 설립, 유지됐기에 은행만큼 공공성 압박을 크게 받지는 않았다지만 그래도 금융기관은 다른 산업체와는 달리 공공성 요구가 컸고 또 이제까지 그런 사회적 기대를 크게 저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 금융산업의 구조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도덕적 이반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는 구조변화에 따른 제도적 기반이 아직 엉성하고 의식구조 상의 변화와 괴리가 존재하는 데서 나타나는 일종의 과도기적 현상일 수도 있다.

바꿔 말하면 금융기관 민영화에 따른 예상되는 허점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사회적 기반들을 재정비할 필요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일 수 있겠다.

물론 법과 제도로만 해결될 수 없는 도덕적 해이가 중요한 원인의 하나이겠지만 외국의 주주자본 자체가 회사의 장기적 성장에는 관심이 없고 자본이득을 취하는데 급급한 특성을 지닌 것이 새삼스러울 것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세계적 기업들의 성장지체에는 주주들의 지나친 단기수익 집착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미 나온 상태다.


자본은 자본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저마다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것이 사회적 공생의 룰을 외면할 경우 그야말로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 될 수도 있다.

극단적인 이익추구가 지속적인 결실 거두기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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