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힐 것과 숨길 것
밝힐 것과 숨길 것
  • 홍승희
  • 승인 2004.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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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위 쓰레기 만두 소동에서는 결국 인터넷의 위력에 보건복지부도 손들고 해당 업체 명단을 밝히고 말았지만 불법행위를 한 업체를 감싸려 드는 관청의 태도 자체는 변하지 않았음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불량식품 문제가 터질 때마다 몇몇 문제기업을 보호하려다 동종 업종 전체를 파산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곤 했던 식약청의 고질적 병폐가 여전한 것이다.

반면 금융감독원이 금융기관 직원의 내부고발을 접하고는 그 내부고발자 신원을 해당 금융기관에 알려줬다 해서 말들이 많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해야 할 감독기관의 행위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다. 해명하기로는 단순 민원인으로 판단해서 민원처리 차원에서 신원을 알려줬다는 것인데 그 변명은 안하니만 못했다.

내부고발 없이도 금융감독원이 금융기관의 내부비리를 제대로 다 파악해낼 자신감이 넘쳐서 내부고발자의 존재를 가볍게 여겼는지는 모르겠다. 허나 내부고발자 신변보장은 투명한 사회를 지향하는 나라들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다. 한국도 근래 이를 법으로 보장하고 그 적용범위를 넓혀 가는 추세다.

문제는 금감원의 이번 까발리기와 식약청의 문제기업 감춰주기가 정반대의 행태같지만 실상은 동일한 의식하에 나타난 행동이다. 기업의 보호가 그 어떤 것에 앞선다는 의식에 지배당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조직은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조폭논리와 별반 다를게 없다.

그런 의식의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내부고발자는 배신자가 된다. 사회 공익적 요구보다는 개인적 의리가 우선함으로써 모든 비리는 사적 관계 속에 묻혀버리고 그 과정에서 비리는 또다른 비리를 낳으며 눈덩이처럼 부풀어져 간다.

그런 조폭적 조직우선 논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중요한 기밀사항의 보안에는 터무니없이 취약한 사회를 만드는 사회문화를 만들어낸다. 사적 관계가 공익적 필요에 앞서는 사고방식으로는 종종 국가적 이해가 걸린 문제에 대해서 조차 사적 인맥을 통해 기밀이 술술 새나가게 만든다. 설사 국가위기를 초래할 주요 기밀이라도 친한 사람에겐 너만 알고 있으라며 다 털어놓는 것이다.

한국전쟁 중 UN군 참전이 이루어지고 한동안 한`미 합동 작전을 펴나가던 미군 지휘부가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최고 지휘부만 모여 세운 비밀작전계획이 반나절이면 적`아 구분없이 모두 아는 공지의 사실로 둔갑해버리니 도대체 비밀작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다 안되니 미군 작전책임 장군이 한국군 작전책임 장군을 헬리콥터로 불러 공중에서 일방적인 작전통보를 하는 해프닝까지 벌였다고 한다.

보안이 생명인 군, 그것도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는 전시의 군대에서도 그 정도였으니 한국인의 보안의식이 얼마나 허약한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요즘도 군 1개 사단이 주둔지를 옮기면 2개 사단 규모의 민간인이 함께 움직여 실상 3개 사단 규모의 이동이 일어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웬만한 부대이동은 인근 상인들이 먼저 안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근래 첨단기술 정보를 포함한 국내 주요 산업기밀들이 경쟁국들, 특히 중국에 적잖이 흘러들어간다. 대개는 국내 기업 내부자들이 팔아먹는 것이다. 산업기밀 유출은 한 기업의 존망이 걸릴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머잖아 본격적인 경쟁관계에 들어가 우리의 가장 경계할 대상이 될 중국의 손에 그 정보들이 들어감으로 해서 곧바로 한국 경제의 목줄을 죄어올 일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기밀을 지켜야 할 사람들에 대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기업의 책임도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책임,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을 제대로 교육해내지 못한 한국사회의 필기시험 성적 중심 교육의 가장 큰 허물이기도 하다. 진정한 신의가 무엇이며 어떤 것이 정말 배신인지를 제대로 분별할 능력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너무 모자란 것은 아닌가 싶다. 밝힐 것과 숨길 것조차 구분 못하는 사람의 뛰어난 영어실력, 수학실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계 속에서 활동을 넓혀나가고 있는 한국인들이 그 부족한 분별력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로 평가될까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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