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읽는 힘
미래를 읽는 힘
  • 홍승희
  • 승인 2004.07.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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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경제는 내수부진과 아울러 기업의 투자부진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왜 기업들은 투자를 않는가. 그 이유를 둘러싸고 해석은 구구각각이며 그러다보니 혈압을 올려가며 다투는 소리도 들린다.

여권 일각에서는 현정부의 개혁정책에 저항하기 위한 기업들의 사보타주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당연히 이에 대해 이익이 있는데 투자하지 않을 기업이 어디 있느냐고 핏대를 올리는 이들이 적잖다.

한편에서는 자꾸 규제를 풀어라, 풀어라만 되뇌이는 통에 기업의 진의에 샛눈 뜨고 의심스럽게 보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어떤든 기업들이 이익을 확신한다면 투자를 머뭇거릴 리는 없다. 능력이 닿고 확신이 있다면 누가 말려도 오히려 투자를 위해 매달리는 게 기업의 생리다.

기업들 입장에서 선뜻 투자에 나서지 못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 몇가지 좀 색다른 시각에서 살펴볼 것들이 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성장 과정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거대한 장벽을 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무협소설 식으로 설명하자면 고수가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높은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런만큼 극복하기에 만만할 리가 없다.

일단 한계에 부딪친 생산규모를 극복하기 위해 이제까지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 계획경제 시절에는 정부가 이런 대규모 투자를 선도하고 기업들은 뒤쫒아가며 이삭을 줍듯 투자의 과실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기업들부터 앞장서서 요구해왔던 대로 시장경제, 철저한 경쟁원리가 도입된 마당에 정부가 민간기업들의 한계 극복을 위해 그런 거국적 투자를 하기는 어렵다.

기업들은 이를 魔의 장벽이라고 부르며 대개 그 한계 투자규모를 5조원 수준으로 본다고 한다.

이제까지 경쟁해온 올망졸망한 경쟁자들을 제끼고 선두로 나서자면 그 이상의 선투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개 기업이 단독으로 이런 투자에 나서려면 그야말로 사운을 걸어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둘째로 한국 기업들은 그간 덩치는 웬만큼 키웠지만 그 덩치에 합당한 기술적 토대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만한 독자기술 개발이 미흡했던 것이다.

세계 시장을 선도할 독자기술 없이 1류 기업으로 한단계 뛰어오르는 성취를 이루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선도적 기술개발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선도 기술이란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場을 열어야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단단한 기초과학의 토대가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가 궁극의 결전에서는 확연한 실력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고정관념이 구석구석 지배하고 있다.
획일화된 사상을 강요했던 조선조 성리학으로부터 불과 10년전까지 이 땅을 지배해온 군사독재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관통해온 지배 이데올로기는 사회적으로 창의성을 죽이는데 매우 유효했다. 교육 역시 그같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세뇌하기에 급급했다.

특별한 것은 그것이 능력이든 개성이든 어떤 것이라도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었고 그래서 누구나 특별하지 않게 키우기 위해 노력해온 사회다.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남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신상에 위험을 초래하는 일은 흔하다. 아직도 유연성이 매우 부족하다. 활용해야 할 사회적 인력뿐 아니라 기업인들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끝으로 유연성 결여와 상관있는 일로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당연한 철학적 명제가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낯설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를 읽는데 몹시 서툴다. 이는 교육 전과정을 통해 철학과 역사 교육을 외면함으로써 초래된 참혹한 결과다.

제대로 깨닫기만 한다면 조금 늦어도 희망이 있다. 그러나 이제서야 조바심치는 한국 사회가 과연 스스로 자초한 자업자득의 결과를 제대로 읽고 인정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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