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어찌해야 하나
환율, 어찌해야 하나
  • 홍승희
  • 승인 2004.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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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급등으로 인해 물가가 불안해지면서 그동안 정부가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해 방어해온 환율정책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의 소비여력이 소진되면서 민간소비는 극도로 줄어드는 추세에서 물가까지 급등할 경우 닥쳐올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은 지난 외환위기에 못지않은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어 정부의 환율억지력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요구는 충분한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이미 일각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경계의 소리들도 나오는 터라 환율 문제는 보다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같은 시의성으로 인해 당장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3일 비록 학회주최 국제학술세미나에서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는 했으나 재경부의 지나친 약세 환율정책의 수정을 요구했다.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바 있는 김태동 현 금통위원 역시 19일 정부가 지속적으로 인위적인 환율하락 방어에 나서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

이같은 목소리에 재경부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장동력이 멈추도록 방치할 수 없는 정부 입장에서 지금 환율 방어를 포기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현재 2년 이상 투자부진에 내수부진이 쌍으로 지속되고 있는 한국경제를 그나마 지탱해주는 것이 수출이고 보면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큰 환율 문제에 선뜻 손을 놓기도 불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시중의 체감경기가 극심한 불황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지표상 성장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환율 방어의 공이 크다. 정부 입장에서 굳이 정치적 고려가 아니라 해도 당장의 대외신인도나 국민들의 불안심리 등을 감안해 지표적 성장 만이라도 붙들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 분명하다.

언제나 정책의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물가와 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으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기업 생산활동이 잔뜩 위축된 상황에서는 물가를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성장엔진이 멈추지 않도록 추동하는 정책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그러자면 그나마 잘나가는 수출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그런 정부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외환보유액에 과도할만큼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점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초로 1천700억불을 넘어섰다는 것은 그나마 정부의 그같은 노력이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선택하느냐 못지 않게 언제, 즉 시기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똑같은 정책도 언제 시행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제까지 정부가 환율방어에 노력해온 것은 충분한 타당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에너지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입장에서 유가가 이미 배럴당 50달러를 넘보고 있고 60달러까지 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 수입 원유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두바이 중질유 가격도 40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앞으로 당분간 원유 수입액이 계속 큰 폭으로 늘 수밖에 없을 것임을 감안할 때 정부의 그같은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그러나 지금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원유 도입 비용으로 인한 출초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그때는 지금의 환율정책이 족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경험한 바 있지만 일단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고 나면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탈출하기는 참으로 지난하다.

정책은 학문적 진정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맞춰 작은 원칙을 바꾸는 능력, 원칙보다 현실이 우선하는 유연성이야말로 정책, 나아가 정치의 진면목이다.

2000여년전 성현이 그랬다던가. 군자도 저자거리에 나서면 시속을 따라야 한다. 일견 융통성없어 보이는 유학의 시초도 알고보면 그런 유연성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거목도 굵은 줄기는 움직임이 없되 잔가지는 바람에 흔들리며 자연을 버텨내고 성장해 가는 법이다.

지금 정부는 환율정책에 보다 강한 탄력을 줘야 한다. 깊이 고민하되 시기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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