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는 지금 전쟁터?
증시는 지금 전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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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일주일간의 추락 추세를 박차고 솟구친 한국 증권시장을 바라보는 국내 언론의 보도 경향은 국내 자금과 해외 자금 간의 전투가 치열한 모습으로 묘사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매도에 나서면서 거액의 개인투자자들이 이를 되받아치는 모습이 애국적 투자로 묘사되는가 하면, 그 뒤를 기관투자가들이 받쳐주고 뒤이어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이 역시 거액의 매입에 나선다는 보도들이 정신없이 이어졌다.

일부 은행의 거액 투자 소식이 도마에 오르면서 만약에 발생할지도 모를 손실이 금융시장에 몰고 올 파장에 대한 우려도 뒤따라 나온다. 은행의 주식투자를 무조건 비판적으로만 볼 일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세계 경제의 전망이 전반적으로 불안한 속에서 소위 ‘대박’을 노리고 시도된다는 거액 주식투자의 결과에 책임 질 사람은 있을지도 궁금하다.

투자하는 측에서는 지금이 매수의 적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며칠간의 주가 폭락이 외부적인 변수에 의한 것일 뿐 우리나라의 펀더멘털과는 무관하다는 그 주장을 납득한다면 여유자금으로 지금 주식투자를 할 때라는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할 이유도 없다.

세계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한국의 경제구조가 지난 몇 년간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더 심화된 마당이어서 과연 펀더멘털을 내세우는 게 정확한, 혹은 정직한 토대를 갖춘 분석인지는 의문이다. 미국에 이어 프랑스까지 신용등급 강등설이 나돌며 세계 증시가 일제히 폭락하는 속에 나타난 한국 증시의 이런 이상 현상이 과연 자연스럽게 나타난 반응인지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강남 아줌마 부대로 이름 붙여진 거액의 개인투자자들이 대체 얼마만한 자금을 동원하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아 보이지만 갑자기 이들에게 애국투사의 이미지를 덧입히는 모습은 꽤 민망해 보인다. 시중 유동자금의 규모가 그간 터무니없이 커졌고 부동산 시장이 투자처로서의 메리트를 잃은 현재 상태에서 증시로 그 자금이 유입되는 것이라면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일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이날의 보도 경향을 보면서 60년대의 애국주의적 전쟁영화 한편을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 정체가 불분명한 이들 개인투자자들 중에 기업의 자사주 주가 방어에 나선 자금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시장 불안을 틈타 자사주 매입을 늘리려는 대기업의 비자금, 경영권 방어력을 키우려는 오너들의 개인자금이 들었을 수도 있다. 은행 최고경영자들이 자사주 매입에 나선 것처럼.

경쟁적으로 자사주 매입을 늘린 끝에 기업 내부에서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런 문제는 국가 경제 단위에서 보자면 별 걱정거리는 아니다. 국내 기업들 간에 적대적 M&A가 나타난다 해도 시장을 뒤흔들 파장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증권시장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한 세대의 노파심일 지도 모를 걱정은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투자에 올인 하는 분위기는 늘 국가경제에 위험을 초래하거나 최소한 국민들의 삶에 보이지 않는 피해를 입혀왔다는 경험에서 나온 반사적 반응이다.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빼나가는 셀코리아의 조짐을 금융당국 스스로 걱정하는 마당에 갑자기 강남 아줌마 부대가 애국 전사로 등장하지를 않나, 국가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정권의 백기사로 나서던 기관투자가들이 전가의 보도인양 전장 같은 시장에 뛰어들지를 않나, 보수적 투자의 전형이어서 마땅한 은행들이 갑자기 수호자로 활약하지를 않나, 이 모든 일이 너무 한꺼번에 일어나니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물론 셀코리아 악몽의 재현을 막겠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나라를 살리겠다’고 나선다는데 그 애국적 열정을 감히 누가 비난하겠는가. 다만 전쟁을 못보고 작은 전투에만 매몰된 지휘관의 무모한 작전에 애꿎은 병사들이 떼죽음 당하듯 개미들이 인위적인 시장열기에 휩쓸려 떠내려가지는 않을지, 내내 마음 한구석엔 찜찜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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