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수천만원 투자하는데 달랑 설명서 한 장?
[기자수첩] 수천만원 투자하는데 달랑 설명서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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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한수연기자] 'R(랜드), Lira(리라), Rub(루블)…'

해외채권 투자 문의에 증권사 지점 직원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해당국가의 경제성장률과 신용등급, 환율, 통화단위 등이 기록된 종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통화 표시채권을 문의하러 간 다른 증권사 지점에서는 앞서 받은 종이 한 장조차도 구할 수 없었다. 이어진 담당 직원의 말은 '남아공, 저평가, 유망' 정도로 요약할 수 있었다.

달랑 지표 몇 개 담긴 설명서와 직원의 말 한마디에 최소 가입금액인 수천만원을 내밀 투자자, 얼마나 될까?

지난해 브라질국채 열풍을 등에 업고 국내 증권사들이 멕시코와 인도, 터키, 호주, 남아공, 러시아 등 해당 통화 발행 채권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올 1월 기준, 대우·미래·동양·삼성·우리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6개 증권사가 개인에 판매한 브라질채권 규모만 해도 약 3200억원에 달한다.

이들 증권사는 채권포럼에 전국 순회 투자설명회까지 해가며 '해외채권의 유망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판매현장에서의 투자자 보호는 이처럼 뒷전이다.

증권사들은 규정을 문제 삼아 항변한다. 현 자본시장법 119조는 금융당국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유가증권에 대해 증권사가 매출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브라질, 남아공 등 해당국가가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한 이들 국가의 채권매매는 불법인 셈이다.

이 규정은 증권사들이 최소 몇 천만원 이상인 해외국채를 팔면서도 단순 중개자 역할에 그치는 것을 정당화시킨다. 자세한 설명이라도 할라치면, 담당 직원은 그 순간 범법자가 된다며 허울좋게 중개수수료만 떼 가는 것이다.

해외채권의 특성상 투자자들은 이들 상품에 대한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해당국가의 환율과 시차, 각 종 매크로 변수를 고려하면 리스크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사정이 이런데도 당국은 해당 규정에 대해 검토 중이라는 말 뿐이다. 해외채권 매크로 전문 인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증권사는 또 얼마나 많은가.

기존 브로커리지 중심의 수익원에 한계를 실감한 증권사들이 최근 해외채권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저성장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면서 개인투자자들의 해외채권 투자 역시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천만원을 투자하는 데 달랑 종이 한 장 내미는 증권사를 찾을 투자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투자시장의 다변화, 글로벌화를 외치기에 앞서 국내 투자자들에게 다양한 국내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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