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은' 금융지주 내부승계…KB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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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서울파이낸스

9일 '연임 우선권' 재논의…경쟁사 본궤도
"금융사 지배구조, 이사회 독립성이 핵심"

[서울파이낸스 정초원 이은선기자] 국내 금융그룹의 지배구조 문제가 또다시 금융권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대다수 금융지주사들이 '내부 승계'를 우선시 하는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한 가운데, KB금융지주의 경우 최근 마련한 지배구조 개선안에 반영될 것으로 보였던 '현직 CEO 연임 우선권'이 안팎으로 논란에 직면한 모습이다.

◇'연임 우선권'에 뒤따른 잡음, 왜?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KB금융 이사회는 지난 3개월간 마련한 '지배구조개선 방안'을 확정했지만, 현직 회장에게 연임 우선권을 주는 'CEO 내부승계'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사회는 오는 9일 이사회를 다시 열고 이 조항에 대해 재논의하기로 했다.

KB금융의 한 사외이사는 "이사회 내부에서는 KB금융의 지배구조를 위해서라도 현직 회장에게 연임 의사를 먼저 묻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며 "하지만 외부적으로 잡음이 있어 다시 논의해 결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KB금융 지배구조 개선안에 이 조항이 적용될 것으로 알려지자, KB금융 외부에서는 '이너서클', '배타적 승계구조' 등 부작용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물론 연임 우선권이 적용되면 지주사를 중심으로 보다 굳건한 지배체제를 갖출 수 있고, CEO가 장기간에 걸친 경영 프로세스를 진행하기에도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조항을 명문화할 경우 현직 경영진과 이사회의 자기권력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KB금융 이사회로서는 그간 외부의 입김에 흔들렸던 KB의 인사 관행을 끊기 위한 일종의 '바람막이' 차원에서 이 조항을 마련한 측면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지배구조 개선안의 단초로 작용한 작년 'KB 사태'도 결국에는 그 원인이 '낙하산 인사'였다는 지적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실제 KB금융은 2008년 9월 지주사 체제로 전환된 이후 한 번도 내부 출신 회장을 선임한 경우가 없었다. 총 4명의 회장(내정자 포함)이 거쳐가는 동안 최대 임기는 어윤대 전 회장 재임 시절인 3년이 고작이다. 황영기 초대 회장은 13개월, 임영록 전 회장은 14개월에 그쳤고, 강정원 전 KB국민은행장은 KB금융 회장 내정자 자리에 오른 상태에서 사퇴했다. 전임 회장 모두 '낙하산 인사'라는 오명을 달고 취임한 것도 동일하다.

KB금융의 한 사외이사가 연임 우선권을 고려한 배경에 대해 "KB를 정상화시키고,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복안 중 하나였다"고 부연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 사외이사 전원이 이달 일괄 사퇴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최대한 KB가 앞으로도 외풍으로 망가지지 않는 구조를 만들고 떠나겠다는 진정성은 인정해 줘야 한다"며 "현재 KB금융 사외이사들이 당국이나 외부의 간섭에 상당히 방어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외부의 논란을 의식한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연임 우선권을 차기 회장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상당수 사외이사들은 현직부터 적용하는 원안에 무게를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7일 열린 회의에서도 이사진 간 입장이 엇갈리며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경제개혁연대는 KB금융 이사회가 고려하고 있는 연임 우선권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경제개혁연대는 "현 CEO의 연임이 사실상 굳어진 상황에서 굳이 들러리 후보 2명을 내세워 회장후보추천위원회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낭비이며, 조직의 불안정을 자초할 우려도 있다"며 "국내외 연구결과에 따르면 신임 CEO가 자신의 경영철학에 부합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는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고 논평했다.

또한 "심각한 실적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2번의 임기를 전제하는 것이 CEO 선임의 원칙"이라며 "더구나 만족스러운 실적을 내고 있는 CEO라면 연임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CEO 승계 절차 확립' 경쟁사들은? 

금융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는 금융당국이 지난해 하반기 직접 가이드안을 마련했을 정도로 금융권 핵심 이슈로 떠올랐던 사안이다. 다만 최근까지도 낙하산 인사 문제로 입길에 올랐던 KB금융과 달리,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등 경쟁사들은 내부승계 체제가 궤도에 올랐다는 평을 받는다.

우선 금융권에서 가장 안정적인 CEO 승계프로그램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신한금융은 KB금융과 비슷한 산통을 겪었다. 과거 '신한 사태' 과정에서 불거진 라응찬 전 회장의 장기 집권과 2인자였던 신상훈 전 사장의 부적절한 경쟁 방법이 승계 시스템을 새로 짜게 된 발단이 됐다.

신한금융은 라 전 회장 이후 취임한 한동우 회장을 중심으로 2011년 5월 CEO 승계프로그램을 새롭게 도입했다. 신규 선임 연령을 만 67세 미만(재임 시 70세)으로 제한해 장기 집권을 차단하고 자회사 그룹경영회의를 통해 후계 구도를 양성하는게 주 골자다.

신한금융도 KB금융과 마찬가지로 현직 CEO에 연임 우선권을 주는 항목 탓에 논란을 겪었다. 2013년 한동우 회장 연임 과정에서 퇴직 임원 및 여타 후보군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것. 결국 신한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연임 우선권을 삭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부·현직 CEO를 중심으로 후계 구도를 이어가는 분위기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한금융이 컨설팅 과정에서 모델로 삼았던 것은 글로벌 금융기업인 HSBC, 씨티, JP모건, BNP파리바 등이다"라며 "이들 기업은 CEO 임기 만료 6개월 전에 최종 후보자를 확정해 현임 우선권을 주고, 유보시 차기 경영 승계 프로그램을 통해 승계하도록 하고 있는데, KB금융도 글로벌 뱅크들을 예로 삼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한동우 회장도 승계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이 제도로 했을 때 외부인사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내부 인사가 유리하게 될 것"이라며 "외부 인사를 영입할 때 바로 회장으로 오기보다는 그룹 임원이나 자회사 사장으로 와서 검증을 받고 나중에 회장이 되는 형태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나금융도 신한금융과 마찬가지로 내부 승계 분위기가 역력하다. 최근 연임에 성공한 김정태 회장의 경우도 금융권 첫발은 타행에서 디뎠지만, 지난 1992년부터는 줄곧 하나금융과의 연을 이어 온 '하나맨'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입 직원부터 단계를 밟아, 회사와 조직원들의 신뢰를 받은 인물이 CEO가 될 수 있도록 하려면 그룹의 승계 프로그램이 작동을 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KB의 예를 들면) CEO가 빠졌을 때 '스토리 금융' 등 (전임 CEO가 추진했던 경영이) 다 사라지는 이런 것들이 사실 내부적으로는 굉장히 혼란스럽다"며 "CEO 후보군을 육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CEO 승계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려면 무엇보다도 이사회의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임 우선권이 부작용 없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도 이사회가 독립성과 객관성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개혁연대는 "CEO 승계 프로그램의 작동 여부는 독립성을 갖춘 사외이사들의 존재 여부가 결정적 요인이 된다"며 "사외이사들도 사적인 이해관계를 갖거나 외압에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임 단계에서만이 아니라 선임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주주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포착하고 해결방안을 강구하는 과정이 전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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