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침몰선 풍경
<홍승희 칼럼> 침몰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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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배가 암초에 부딪치거나 풍랑에 갇혀 침몰할 때 누가 가장 먼저 배에서 내리고 또 누가 가장 마지막까지 배에 남을까.
실제 침몰선의 상황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타이타닉이나 포세이돈 어드벤처 같은 해난 영화들을 보면 선장과 선원들, 그 가운데서도 지휘권을 가진 선원들이 가장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승객들의 하선을 돕는다. 배의 운항에 대한 권한이 큰 사람들일수록 책임감도 막중해서 가장 최후에 하선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먼저 내릴까. 사람으로 치면 어린아이와 여자들, 노인들 등 약한 순서대로 우선권을 준다. 물론 그 와중에도 새치기를 하려는 사람들이 영화 속에 등장해 밉상을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 이전에 가장 먼저 배에서 내리는 생명체는 ‘쥐새끼’들이라고 한다. 동물적 본능에 의지해 위험을 먼저 감지하고 도망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해에서 그런 행동이 생명을 보장해주지는 못할 테지만 어쨌든 쥐새끼들이 가장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보고들이 많이 나왔다.

이런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침몰선의 아수라장과 유사한 구경거리가 생겼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며 근심스럽게 지켜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구경꾼 입장에서 보자면 한편의 재난영화를 보는 것과 흡사한 풍경들이 연출되고 있다. 이번 구경거리는 배가 외부적 여건에 의해 침몰했다기 보다 내부에서 미리 좌초를 점치며 배를 고의로 침몰시키는 진풍경이어서 더 가관이다.

사방에서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고 있는 여당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을 수 없어 도중하차 하는 것이야 말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 나서서들 창당한지 겨우 4년이다. 누가 하라고 권해서 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하자고 설치고 나섰던 이들이 와르르 집단 탈당을 한다.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을 앞세워 창당을 하고 그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내팽개치고 나가며 내놓는 이런저런 정치적 수사들이 듣기에 좀 남세스럽다. 더욱이 이 정권에서 입각했던 이들이 이 당으로는 안되겠다며 내거는 구실들은 그게 무엇이 됐든 듣기에 민망하다. 이 정부가 국민적 신망을 잃었다 쳐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인 그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이미 염치를 잃은 행위로 비칠 뿐이다.

실상 요즘의 미디어 여론만 보자면 여당 프리미엄 따위는 고사하고 여당 핸디캡만 있을 상황이니 정치꾼들 처지로는 불안하기도 할 터이다. 이미 역사적 평가 따위를 염두에 두지도 않고 또 신뢰받는 정치인이기를 기대하지도 않으며 단지 눈앞의 선거에만 온통 관심이 쏠린 그들의 정치생명이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구경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조바심이 안쓰럽고 저들의 얕은 역사의식, 정치의식이 곧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기에 안타깝다. 비록 침몰하는 배에서일망정 의연하게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당당한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은 턱없는 욕심일 게다. 우리가 애초에 그런 책임감을 중요한 덕목으로 배우고 가르치지도 않았고 또 그런 짐을 제대로 누구에게 지워준 적도 없다. 그저 스스로 짐보따리 짊어지려니 자신을 속이며 지내왔을 뿐.

이미 열린우리당이라는 신형 배는 침몰을 시작했다. 쥐들이 먼저 다 내렸으니 이제 어린애와 노인들부터 내리기 시작할 시점이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까지 배를 지키는 선장과 갑판장과 기관사, 책임감있는 선원들의 의연함을 더욱 보고 싶다.
 
홍승희 기자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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