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이상균 기자] <philip1681@seoulfn.com> 은행권이 방카슈랑스 4단계 시행 연기라는 핵펀치를 맞고 비틀거리고 있다. 방카 시행 일정이 계속 연기되는 것도 문제지만, 그동안 방카 시스템 구축을 위해 쏟아 부은 돈이 물경 276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20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2005년 방카 시스템 구축에 166억 원을 이미 쏟아 부었으며, 이번 역시 110억 원이란 금액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110억 원이란 금액은 금융사의 IT계열사 몫을 뺀 것이기 때문에 이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은행들의 속이 쓰라릴 수밖에 없는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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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린 속 부여잡는 은행
우리은행의 경우, 우리금융정보시스템이 동양시스템즈와 함께 방카 시스템 구축을 진행했다. 우리금융정보시스템만으로는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번 구축 작업은 이미 60% 가량 진행된 상태다. 하지만 투입될 5억 원에는 우리금융정보시스템에 지불될 금액이 빠진 액수다. 같은 계열사라는 이유로 애초부터 금액 산정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유지 보수 비용도 빠져 있다. 지난 2005년에 구축했지만 써먹지도 못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은행들은 거의 3년 동안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왔다. 여기에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소요됐는데 166억원에는 이 금액이 산정돼 있지 않다.
상대적으로 보험사의 피해는 미미하다. 방카슈랑스는 보험 상품을 은행에서 파는 것이다. 보험사에서는 은행에 전문을 보내는 시스템만 구축하면 된다. 전문이란 은행에서 방카 계약이 체결될 경우 보험사에 보내주는 고객 정보를 말한다. 상대적으로 은행에 비해 단순 작업이다. 한 손해보험사의 경우, 방카시스템 구축에 2명을 투입했다. 반면, 은행들은 20~30명으로 구성된 TFT를 운영해왔다.
■비용만 2배 들어간 꼴
이번 방카 연기를 바라보는 은행권의 시스템 구축 담당자들은 격앙된 상태다. 시행을 코앞에 두고 두 번씩이나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신한은행 시너지지원본부 윤승탁 본부장은 “결과적으로 비용이 2배 들어간 꼴이 됐다”며 “진작에 시행 연기가 결정됐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시행 의지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나은행 전산금융개발부 양흥규 차장은 “이렇게 된다면 4단계 방카가 다시 시행된다 하더라도 순순히 따라 올 은행들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설계사의 표를 의식해 정치논리로 상황을 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의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경제정책을 정치 논리로 풀려는 자세도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은행권에서는 반격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시중은행장들은 21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4단계 방카 시행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전의 방카 대책 회의가 실무진 또는 부행장급이 참여했던 것을 감안하면, 은행들이 이번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상균 기자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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