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는 새 대통령이 취임 이후 100일간은 언론과 의회가 새 정부를 너그럽게 봐주는 관례가 있다. 이를 FHD(First Hundred Days)라 하며 1월 20일 취임식부터 짧게는 100일, 길게는 의회가 여름 휴회에 들어가는 7월 초까지를 허니문이라고 부른다. 이 기간을 선거 과정에서 초래된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적 단합을 다지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FHD는 1933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임기 때 처음 만들어진 용어다. 1930년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100일 동안(1933년 3월 9일~6월 16일) 뉴딜 정책의 밑거름이 된 법안 5개에 서명하고 3개 정부 기관을 창설했다.
취임 연설을 기준으로 시작되는 FHD는 새로운 법안들이 짧은 시간 내 빠르게 상정되면서 큰 정치적 변화가 나타나는 기간이라는 점에서 선거 이후 가장 주목을 받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취임 이후 빠르게 정책을 발표하면서 허니문 기간의 전통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 모습이다.
트럼프는 1월 20일 취임식 날부터 21일까지 이틀 동안 서명한 행정명령은 26개, 메모는 12개, 선포는 총 4개를 하면서 빠르게 정책을 실현했다. 대표적으로 알래스카 등 환경규제 완화를 통한 원유/가스 생산 확대하고 IRA 등 지원금을 일시 중단시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파리기후협약과 WHO, UN 인권위원회에 탈퇴하면서 미국 정부의 국제 기금 지원금도 모두 중지했다.
대내적으로는 DOGE(정부효율부처) 설립 명령을 통해 정부지출을 대폭 축소하고 DOJ(법무부), SEC(증권거래소), FTC(연방거래위원회) 수사 종료 행정명령으로 빅테크 기업들의 독점 수사 리스크를 완화했다. 이 외에도 스타게이트를 통한 AI 투자 확대와 AI 관련 규제 리스크를 모두 완화시키면서 친기업 정책을 실행했다.
이민자 정책으로는 국경 벽 재설치 명령과 남부 국경에 군인 투입 명령, 미국령 태생 시민권 부여 중단 등을 통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확보하고 마약, 범죄로부터 안전한 국가를 만드는 정책에 앞장서는 모습이다.
오직 미국을 위한 미국인들을 위한 자국 중심 정책이 트럼프 2.0 시대의 핵심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을 포함한, 유럽, 캐나다, 멕시코 등 다른 국가들은 트럼프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관세 정책에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말 관세 정책으로 트럼프는 미국을 부흥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이론적으로 관세 인상 정책은 국내 상품가격 증가와 국내 생산 증가로 수입 물량이 감소하면서 자국의 순 수출이 증가한다. 이는 다시 국내 생산 증가로 연결돼 은행들의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국내 자산에 대한 매력도가 높아지면서 자국 통화 가치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 정책가들은 이러한 선순환 사이클을 기대하지만 실상 보호무역 정책을 단행할 경우 대체 불가한 품목들의 수입 물가를 올리고 상대국들의 보복 관세로 이어져 글로벌 무역량 감소, 소비위축으로 실패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2025년 1월 실시한 경제학자들 대상 설문에 따르면 '트럼프의 관세 조치가 물가 상승을 초래할 것이다’에 반대한 사람은 2%에 불과하다. 98%가 모두 동의했다.
결국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기둔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2018년 미-중 무역 분쟁 당시 물가를 올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관세 정책을 맹신하는 모습이다. 당시에는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치솟는 물가에 방어할 수 있었던 부분이 있다. 지금은 금리를 내리는 기조에서 관세 정책은 물가에 더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허니문 기간 트럼프는 4개의 관세 정책 시행을 예고했다. 2월에 이미 시행한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 10%p는 물가에 미치는 여파는 크지 않다. 중국과 무역 거래 규모도 코로나19 이후 크게 감소했으며 2024년 기준 전체 중국 GDP에서 미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4%로 미미하기 때문이다.
반면 3월에 예정된 멕시코,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부과는 다르다. 2024년 기준 캐나다와 멕시코의 미국 수출 비중이 각각 GDP의 20%, 27%인 점을 고려하면 멕시코와 캐나다 경기 침체를 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다.
4월에는 더 강한 관세 정책을 예고했다. 모든 국가에 비관세 장벽을 포함한 상호 관세 부과다. 한미 FTA로 한국의 경우 관세율은 낮다는 점에서 영향은 크지 않지만 한국 역시 부가가치세(VAT, Value Added Tax) 10%를 통한 비관세 장벽을 가지고 있다. 또 반도체, 자동차, 의약품에 25% 관세를 부과할 경우 이는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2024년 기준 한국 전체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달하며 한국 실질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5%가 넘는다. 반도체, 자동차, 의약품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품목 중 상위 품목으로 수출의존도가 높고 내수가 약한 한국 경제에 미치는 타격은 클 것이다.
다행인 점은 미국과 한국 유럽 등 글로벌 주식시장은 이러한 트럼프 관세 정책 예고에도 연초 이후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취임 첫날 실행하겠다고 선포한 것과는 다르게 협상의 길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관세는 목적보다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오히려 트럼프의 협상가 기질을 재확인했고 각국의 정책 당국자들과 금융시장의 트럼프 정책에 대한 학습 효과는 더 강해지고 있다.
정책에 대한 전망은 어렵지만 2018년 트럼프 1기 미중 무역분쟁 당시에도 최대 압박을 통한 협상 우위를 점령하려는 모습을 취했으며 미국산 농산품과 항공기, 자동차 구매를 늘리는 것으로 2020년 중국과 협상했다.
다만, 트럼프가 관세 인상을 통한 협상에 우위를 보일수록 관세 카드를 더 많이 들고나올 가능성이 높다. 결국 미국과의 무역적자를 감소시키는 선에서 또한 미국에 이로운 쪽으로 협상할 가능성이 높다면 오히려 미국 주식시장 투자자들에게 트럼프 관세 정책에 따른 변동성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관세정책이 실행된다고 하더라도 그 여파는 상대적으로 미국이 덜하기 때문에 더욱더 미국 중심의 쏠림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과 2019년 미국 주식시장과 유럽, 신흥국 주식시장의 디커플링 흐름을 보면 정답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트럼프는 4월 감세 초안 발표, 금융 규제 완화 법안 등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미국 대내 경기부양책을 통한 관세 피해를 최소화한다면 이는 미국 주식시장에 하단을 지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