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달러 영화 '레드 노티스' 재림···역대 최대 제작비 효과 '無'
영화 매체 특성에 부적절한 시청 환경···'극장의 필요성' 실감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넷플릭스는 그동안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에도 과감한 제작비를 투자해왔다. 지난해 공개된 드라마 '삼체'는 총 8부작에 제작비가 1억6000만 달러로 '오징어 게임2' 제작비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더 크라운'이나 '기묘한 이야기', '위쳐' 등도 회당 제작비가 1000만 달러를 넘으며 대작 드라마에 이름을 올렸다.
대규모 제작비를 투입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는 화려한 볼꺼리뿐 아니라 작품성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으며 후속 시즌을 예고했다. 그러나 '돈 쓴 만큼 돌아오는' 성과는 드라마에만 통하는 것일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는 드라마와는 다른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에도 과감한 제작비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넷플릭스의 이 같은 투자가 좋지 못한 결과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 14일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3억2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앞서 언급한 8부작 드라마 '삼체' 시즌1 제작비의 2배 규모다. 영화를 연출한 루소 형제의 성공작인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 제작비(1억7000만 달러)와 비교해도 2배 가까이 되는 수준이다.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루소 형제(조 루소, 앤서니 루소)가 연출했고 '윈터솔져'부터 이들과 함께 한 스티븐 맥필리가 각본을 썼다. '기묘한 이야기'로 스타덤에 오른 넷플릭스의 공무원 밀리 바비 브라운과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의 '스타로드'인 크리스 프랫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최고의 연출진과 작가, 배우진이 합류하고 부족함 없는 투자를 받아서 '망하기도 힘든' 수준의 작품이 됐다. 그러나 영화가 공개된 직후 곳곳에서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해외 영화 평점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전문가 평점(토마토지수) 14%를 받았다. 이는 소니 '스파이더버스'의 숨통을 끊은 영화인 '크레이븐 더 헌터'의 15%보다 낮은 수준이다.
메타크리틱스에서도 전문가 점수(메타스코어)가 100점 만점에 29점에 불과하다. 다행히 로튼토마토 관객점수인 팝콘점수는 72%를 받았지만, 메타크리틱스에서는 관객 점수인 유저스코어마저 10점 만점에 3.8점으로 절반에 못미쳤다.
국내에서는 '일렉트릭 스테이트'에 대해 다소 무난하다는 반응이다. OTT 종합 정보 플랫폼인 키노라이츠에서는 '일렉트릭 스테이트'가 100점 만점에 57점을 획득했다. 왓챠피디아에서도 이용자 평균 점수가 5점 만점에 2.7점으로 무난하다는 반응이다.
표면적으로 '일렉트릭 스테이트'가 완전히 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넷플릭스 플랫폼 내에서는 화려한 스탭진과 배우들의 영향으로 시청자수가 폭증하며 초반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 역대 최대 제작비 영화'라는 타이틀을 고려하면 폭발적인 화제성과 흥행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일렉트릭 스테이트' 이전에 넷플릭스 역대 최대 제작비 영화는 '레드 노티스'다. 2억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는 현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역대 최다 시청시간 기록을 가지고 있다. 다만 로튼토마토에서는 토마토지수 32%, 메타크리틱스 메타스코어는 37점을 기록했다.

'레드 노티스'의 경우,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제작비 상당수가 주연배우인 드웨인 존슨과 라이언 레이놀즈, 갤 가돗의 몸값으로 들어간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 중에 촬영한 만큼 로케이션 촬영 대부분을 CG로 대신해 제작비 상승요인이 됐을 수도 있다.
넷플릭스 역대 최대 제작비 영화 1, 2위인 두 작품은 모두 그 이름값 덕분에 많은 시청시간을 확보했고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무난하게 봐줄만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구독자 유입에 기여할 만큼 높은 화제성을 확보하진 못했고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혹평도 들었다.
이 밖에 잭 스나이더가 연출하고 배두나가 출연한 '레벨문'은 파트1, 2 합쳐서 1억66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비평과 흥행(화제성) 모든 면에서 망했다. 이후 넷플릭스에서는 이례적으로 감독판이 공개됐지만, 감독의 명예만 회복했을 뿐 분위기 반전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반면 47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한 스릴러 영화 '캐리온'은 넷플릭스 역대 최다 시청시간 영화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토마토지수 87%, 메타스코어 69점으로 비교적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키노라이츠에서도 89점을 획득하며 호평이 이어졌다.
루소 형제가 제작에 참여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익스트랙션'은 로튼토마토에서 토마토지수 67%, 팝콘지수 71%를 받았다. 역대 영화 순위 각각 3, 4위에 있는 영화 '돈룩업'과 '아담 프로젝트'도 비평과 흥행 모든 면에서 준수한 평가를 받았다. '돈룩업'과 '아담 프로젝트'에는 각각 7500만 달러, 1억16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넷플릭스는 표면적으로 영화가 성공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드라마처럼 긴 호흡을 가지고 보는 대신 2~3시간 내에 집중해서 봐야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집안에서 TV나 스마트 기기로 시청하는 플랫폼의 특성 때문에 온전히 몰입감을 느끼기 어렵다.
짧은 호흡으로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스펙타클한 화면이나 웅장한 사운드와 같은 장치를 심어둔다. 그리고 극장은 이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다. 드라마 역시 영상과 음향에 공을 들이지만, 호흡이 긴 드라마에서 시청각이 하는 역할은 영화보다 크지 않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의 여러 시청각적 자극은 극장에서 보는 것보다 빈약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짧기 때문에 아무리 이야기가 갖춰져 있어도 시청각적인 자극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극장과 같은 환경이 아니라면 온전히 시청자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디젤펑크 세계관을 담은 시각효과로 충분한 볼꺼리를 선사한다. 그런데 화려한 시각효과로 담아낸 세계관이 온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만약에 88인치 4K 대형 TV와 돌비 애트모스 지원 사운드바를 비치하고 이 영화를 봤다면 조금 다르게 다가왔을까?
애석하게도 본 기자는 이 영화를 노트북으로 왔다. 시청자들 중 상당수는 홈씨어터 환경을 구축하지 못하고 거실에서 편안하게 봤을 것이다.
현재 대부분 극장들은 관객들에게 좀 더 편안한 영화관람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영화는 불편하게 봐야 집중이 잘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영화가 기대보다 심심해서 별로인 점도 있겠지만, 극장이 아닌 곳에서 봐서 더 아쉬운 점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