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정부가 가계대출 정책을 한 달도 되지 않아 변경하면서 은행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이 대출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했지만, 최근 금리 하락과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등으로 집값이 들썩이자 "운용의 묘를 살리라"는 모호한 주문을 하고 있어서다.
은행들은 올해 들어 정책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이 오히려 감소한 상황에서 대출 문턱을 더 높이기도 어려운 처지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7일 금융당국이 주재한 '가계부채 점검 회의'에서 당국 관계자들은 서울 강남 3구 등 주요 지역의 주택 거래 증가와 가격 상승 현상을 우려하며 '매수 심리 확산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시장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대출 규제 조치를 시행해달라"고 요청하면서도 "당분간 가계대출 가산금리 인하 요청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이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한 것과는 상반되는 태도다.
은행들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 부족이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 초 시장금리가 빠르게 하락하며 대출금리도 이미 내려가는 상황이었는데, 당국이 추가 금리 인하를 독촉했다"며 "갑작스러운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결정도 마찬가지. 정부와 지자체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먼저"라고 비판했다.
한 은행이 4월 초 주택담보대출 강화책 시행을 계획하자, 당국은 "이달 안에 시행해 시장에 '대출 조이기' 신호를 주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달 가계 대출 현황도 정부의 대출 억제 압박과 잘 맞지 않는다.
이달 20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38조2833억 원으로, 2월 말보다 1조5314억 원 증가했다. 하지만 증가 폭은 2월(3조931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또한, 정책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 잔액은 올해 들어 5조 원 넘게 감소했다. 5대 은행 중 이 기준으로 가계대출이 증가한 곳은 KB국민은행이 유일하다.
한편, 이달 5대 은행의 주택구입용 신규 주택담보대출(3조923억 원)은 2월(7조4878억 원)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둔화하는 추세지만, 거래된 부동산이 대출로 연결되는 데 시차가 있어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