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 달러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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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외환정책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IMF가 외화보유고 적정성을 들먹여 논란을 일으키더니 최근에는 세계은행이 또 한국의 달러 보유가 과도하다고 관심을 표했다.

거기에 더해 국회에서는 높은 외화보유고를 유지하는 데 따른 재정적 손실이 눈덩이 불어나듯 커져만 간다며 정치적 공세까지 더해지고 있다.
국회재경위는 9월 중순 권오규 재정경제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의 ‘외국환 평형기금의 운용 실태와 누적적자 해소방안’을 보고 받으며 마치 봇물 터지듯 질타해 나갔다고 한다. 정책실패 문제로 몰아붙이며 감사원 감사까지 요구하는 등 심하게 압박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말 기중 외평기금 누적손이 18조에 달하니 문제 삼을 만은 하다. 손실이 커진 만큼 환율 방어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 공세를 벌이는 의원들의 시각이다. 그러나 실상은 참여정부 들어 3배나 늘어난 외평기금 규모 44조원이 야당 의원들에게는 그야말로 맛깔스러운 요리 재료를 손에 쥔 듯싶기도 할 터이다.

그런데 외화보유액이 이처럼 늘어난 것이야 외환위기를 경험한 정부로서 그러함직한 일이고 또 달러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수출 채산성 문제가 야기되는 상황에 대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수출의존도가 높은 나라의 숙명이니 또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 외화보유 규모 문제는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고 중·장기적인 손익 역시 찬찬히 따져보며 신중하게 대처할 것이지 훈수꾼의 말만 쫒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손실액이 지금처럼 커진 원인은 좀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손실발생 요인으로 환율방어 과정에서 환차손이나 조달 금리와 운용금리의 차이, 그리고 파생상품 거래 등으로 인한 손실 등이 꼽히고 있다. 환율방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적자는 그렇다 치고 파생상품 거래 등으로 발생하는 손실은 큰 문제가 있다.

지난해에만 외화보유에 따른 손실이 4조6천억 원이나 발생했고 그 가운데 선물환 성격의 파생상품 거래로 날린 돈이 7천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2004년에는 환율 급락으로 NDF를 대거 매입했던 것이 누적손실액 증가에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한다. 원금 교환이 안 되는 선물환인 NDF를 매입해 그 해에만 그로 인한 손실액이 2조원에 달했다는 대목에선 참 할 말이 없다.

한마디로 선물환거래는 하면 할수록 손실만 키웠다는 얘기다. 그 얘기는 곧 세계 환시장 전망을 영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얘기일 터이다. 시장 전망도 제대로 못하면서 환거래에 나서면 손실을 크게 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보유 외화를 투자하지 않고 쌓아둘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 참 딱하다. 미국의 전 재무장관인 로렌스 서머스가 세계은행의 입장에 서서 과잉 보유 달러를 장기 금융 상품에 투자하라고, 그러면 장기적으로 일정 수익을 보장하고 리스크를 중일 수 있다고 조언을 했다지만 일면 들을 법도 하고 일면 의심이 들기도 하는 얘기다.

우선 시장 전망을 정확히 해내지 못할 바에는 단기상품의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이 정답이기는 하겠다. 그러나 과연 조달금리를 능가할 수익이 나올 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원화 가치는 내년 중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외국계 투자은행들로부터 속속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쌓아둔 달러는 그만치 ‘돈 되는’ 자산인 셈이다. 또 내년 중 달러 강세를 시현하는 데 세계 달러보유 규모 1~4위를 휩쓸고 있는 동아시아 4개국의 보유 달러는 매우 강력한 걸림돌이 될 터이다. 그러니 우리도 쓸만한 무기 하나 챙긴 셈이다.

적어도 외국계 투자은행들의 전망이 맞다면 기왕 불어난 보유 달러를 지금 팔 일은 절대 아니다. ‘과도한 보유’라고 비난받는 달러가 효자되게 생긴 것이다.

우리도 이제 IMF가 됐든 세계은행이 됐든 저들이 한국의 외화보유 규모를 들먹이는 건 진심으로 한국 경제를 염려해서가 아님을 경험적으로 알만한 때도 되지 않았나. 미국이 설정한 아젠다에 무턱대고 국내 정책을 지지고 볶는 일은 이제 그만 하자.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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