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 차관의 '이상한' 부동산 셈법
재경부 차관의 '이상한' 부동산 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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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통령의 정책 발언을 반박하는 정부 관료들이나 대통령 관련 언론 보도를 접하다 보면 학생폭력을 다룬 서투른 영화 한편을 보는 찝찝한 기분이 든다.

이미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고도 끝내 항복하지 않는 1명의 ‘전교 짱’과 그를 그 꼴로 만든 주먹 센 학생들 그룹, 그리고 주변에는 맞으면서도 질기게 버티는 맷집이 오히려 끔찍하다고 수군대며 구경하는 일반 학생들. 맞고 있는 학생을 따라다니던 또 다른 아이는 이제 오히려 주먹 센 학생들의 편에 서서 제 안전을 챙기기 위한 배신을 한다.

지금 모든 언론이 너나없이 차기 정권은 야당으로 이미 넘어간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언론만 그런 것도 아니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집권 실패를 미리 예상하고 이런 저런 판짜기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이런 판국이니 임기 1년 남짓 남은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 그의 발언은 그게 무엇이 됐든 샌드백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이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은 실상 오래 됐다. 몇몇 메이저 신문들이야 처음부터 시쳇말로 ‘비호감’ 대통령을 변변히 대통령으로 인정해본 적도 없다고 봐야 할 터이다. 그나마 한 때 호감을 보이던 일부 매체들도 이제는 잇단 대통령의 실언(?)에 질색을 하는 모습이다.

그래도 현직 대통령이 임명한 관료들은 끝까지 함께 가야 할 법 하건만 이제는 그들도 대통령의 ‘말씀’ 알기를 ‘개떡’ 같이 여긴다. 대통령이 무슨 정책을 말하면 이튿날 관련부처 차관, 국장급들까지 나서서 “할 수 없다”고 짓뭉개버린다.

이번 연말연시에도 그랬다. 대통령이 분양원가를 공개해 부동산을 잡겠다고 한마디 하니 당장 다음날 재경부 차관이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기업 이익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한다. 이게 국무회의 석상에서 나온 발언이라면 참 민주적인 정부라고 기특하게 봐 줄만한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국민 앞에 공식 발표한 내용이 단 하루 만에 짓밟혔으니 정부 꼴은 이미 만신창이임을 재확인시켜준 셈이 됐다.

우리는 근세조선 5백년을 왕의 나라가 아닌 사대부들의 나라로 이어왔다. 정도전으로부터 송시열로 이어진 조선 사대부들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명나라 황제 외에 조선의 주인은 따로 없으며 조선의 왕은 단지 사대부들 중 대표 정도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왕권은 거의 입헌군주국에 비할 정도의 제한된 수준에 불과했다. 세계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정치구조였다.

그런 왕조시대가 끝난 지금도 대한민국의 통치체제는 근세조선의 구조와 유사한 점이 많아 보인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은 대통령 중심제 국가의 권한보다는 내각책임제 하의 총리와 대통령 권한을 반씩 섞어놓은 듯한 이상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장기간의 독재를 경험하고 얻은 절충형 권력구조인 탓이리라.

어찌됐든 대한민국은 현재의 체제로 볼 때 당분간 누가 대통령이 돼도 힘차게 정책을 밀어붙여 가기는 힘들 듯하다. 여당이 일당독재도 할 만큼 의석수를 확보한다면 모르겠지만 그 이후의 후유증은 1백년 세도정치로 절단 난 조선의 역사나 4.19로 마감한 이승만의 16년, 10.26으로 끝장 본 박정희의 18년으로 차고도 넘치게 겪었다.

현재로 되돌아 와서 오늘을 다시 보고 생각하자. 재경부 차관의 발언은 참 희안하다. 기업의 이익창출에 불리하니 아파트 분양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땅값을 공개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이게 지금 부동산 거품으로 끓어오르는 나라의 관료로서 할 만한 발언인지 궁금하다.
 
그의 주장을 더 들어보자면 많은 이익을 주어 아파트를 계속 공급하게 해야 한다는 것인데 10년 전 일본이 그렇게 한 결과가 어떠했는지 잊은 걸까. 그 이후 남아도는 주택들이 소진될 때까지 일본 경제가 제대로 허리를 펼 수 없었다는 사실은 그냥 눈감아 버리면 사라지는 걸까. 땅값으로 계속 이익을 보는 건설업체들이 있는 데도 부동산 값 안정이 가능하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거라면 그 이상한 셈법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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