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고통을 아는가
집 없는 고통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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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나 정부 관료들의 주택 정책 관련 발언들을 듣다보면 종종 참 배부른 소리들 하고 있구나 싶다. 원론적으로는 꽤 옳은 소리인성 싶지만 집 한 채 가질 돈이 없는 서민들 입장에서 보자면 울화가 치밀 말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를 왕왕 떠드는 이들에게는 문득문득 민주사회 시민의 자유 가운데 중요한 항목 중 하나이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헌법도 보장하고 있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는 자들만 누리는 자유를 뜻하느냐고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 어디든 집값이 비싼 동네와 싼 동네는 나뉘기 마련이라지만 문제는 그 정도에 있다.

서울은 이제 강남 부자와 강북 서민으로 완전히 구획정리 된 모양새로 정착돼 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강북 사람들에게 강남은 아득한 별세계인 양 싶은 게 사실이다. 그런 강북 사람들의 상실감을 파고든 강북 뉴타운 계획은 서울의 부동산 투기 바람에 강풍을 더 보탠 꼴이 됐다. 그렇게 해서 강북의 집값이 5% 오르면 강남은 10%가 오르며 강북 서민들 기를 더 꺾어놓는다. 1억 짜리가 5% 오르면 5백만 원 오르는 데 그치지만 10억 짜리가 10% 오르면 1억원이 오른다. 그렇게 양극화는 더 심화돼 갈 뿐이다.

흔히들 부동산 문제를 두고 사회 초년생들이 이러저러하게 계획을 세워보면 얼마쯤 후에는 내 집 한 칸 마련하겠구나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그런 소박한 삶을 설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바람직하기는 필요하면 언제 어느 곳이든 큰 비용 부담 안 느끼며 보따리 하나 들고 이사 갈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내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전사회적으로 떨쳐버릴 큰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런 일이 무슨 의식개혁 운동 따위로 가능할 일은 물론 아니다. 집이 없어도 겁날 게 없는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형 평수일망정 내 집 한 칸 지닌 사람들에게는 갑자기 앉아서 집값 뚝 떨어지는 꼴을 보자면 그 또한 속에서 열불 날 일일 터이다. 그 집 한 칸 마련하느라 허리띠를 졸라맸던 그 수고가 다 부정당하는 허무감에 빠질 수도 있을 터이다.
실상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라면 대개는 집 한 칸이 전재산이다. 그리고 그 집 한 칸에 노후생활의 설계도 다 들어있기 십상이다.

지금 70대 이상 노년층들의 생활비 조달 방식 중 가장 흔한 유형이 집을 조금씩 줄여가는 것이다. 국민연금 수혜를 받지 못하는 그들 세대에게 있어서 거의 유일한 재산은 그 사는 집 한 칸이고 그걸 비싼 곳에서 조금 싼 곳으로, 더 싼 곳으로 옮겨가며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 정책은 바로 이런 세대들에 대한 고려까지 담아서 세워져야 한다. 안정된 직장인인 공무원들의 책상 위에서 외국 사례들만 늘어놓고 짜맞추기 식으로 만들어진 정책들이 이제껏 우리를 휘둘리게 해왔다.

요즘 국민은행을 필두로 여러 은행들이 앞 다퉈 내놓고 있는 부동산 담보대출 제한 조치도 소득이 불안정한 수많은 서민들에게 아득한 절망감을 안겨줬다. 물론 긴급한 생활자금 공급이 막히지 않도록 주택 구입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득에 따른 대출 제한을 풀겠다는 조치가 뒤따라 나오기는 했지만 아무튼 한 번 크게 상처 입었다.

중년층에게 조기퇴직의 위기감은 아직 여전하고 청년층은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로 내몰리고 준비없이 노년을 맞은 노인들이 할만한 일거리는 극히 희박하다. 그런 그들이 아직 집이 없다면 앞으로 내 집 가질 가능성은 갈수록 낮아진다.
 
그런 판국에 정부 정책이 건설업체들이 큰 이익을 보고 달려들 꿀물을 장만하는 데만 골몰한다면 서민들은 맘 붙일 곳이 없어진다. 그래서 일전의 재경부 차관 발언은 대통령의 약속을 짓뭉갰다는 점보다 서민들의 희망의 싹을 잘랐다는 점에서 더 잔인하고 황당해 보였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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