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조아 기자] 밸류업 가이드라인이 나온지 4개월이나 지났음에도 당사자인 기업들이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주주환원만 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과 거래소의 커뮤니케이션 부재로 발생한 문제라는 분석도 있었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교수는 20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재무 이론에 따르면 주주환원이 증가한다고 무조건 기업 가치 제고가 되는 게 아니"라며 "밸류업은 우리 회사 자본비용이 얼마인지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데, 기업들이 구체적인 자기자본비용(COE)이 얼마인지 주주들에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자본비용(COE)은 기업이 회사채나 주식발행 등으로 자본을 끌어다 쓴 뒤 지급해야하는 이자나 배당 등의 비용이다. COE보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으면 자본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지금 회사가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본 비용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밸류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기업가치 극대화이며, 주주환원은 목표가 아닌 수단·과정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주주환원이나 재투자를 통해 기업가치와 시가총액, 주가를 올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ROE가 COE보다 클 경우 주주환원 대신 재투자를 하는 것이 기업가치 증가에 기여할 수 있다"면서도 "국내 투자자들은 회사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ROE가 높을수록 배당을 더 늘리는 게 좋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배당을 지급하는 게 투자자들로부터 기업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도 기업 밸류업에 대해 모두가 잘못 짚고 있다고 힘을 보탰다.
그는 "주주환원은 밸류업을 위한 수단 또는 방법이고 목적이 아닌데 우리나라 기업 대다수가 밸류업을 잘 모르고 있다"며 "당국과 거래소가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언급했다.
이날 현장에 참석한 다른 참가자들은 기업들이 발생한 이익을 주주환원하거나 재투자 하지 않고 회사에 쌓아두면 주가는 하락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발생한 이익을 기업가치와 시가총액을 높이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규식 변호사는 "현금이 흐르는 자산 주위로 형성되는 밸류가 자산에너지의 본체이자 실체"라며 "궁극적으로 밸류업 성장을 위한 재투자를 통해 혁신 경제를 구현하려면 이 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천상영 신한금융지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아직까지 기업가치제고 공시에 대해 참여하지 않거나 고민하는 기업들이 많은 것 같다"며 "해외에서 한국 기업과 자본시장에 대해 관심도가 높아진 만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이해당사자들이 노력하면 개별 기업의 가치제고 뿐만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을 한 단계 레벨업 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