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주거 선택 요인 '쾌적성'···조경 특화 경쟁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애기가 있다 보니까 단지 밖에는 차도 다니고 위험해서 단지 내 조경이 잘돼있는 걸 보고 선택했어요. 집 주변 환경이 조경으로 좌우되다 보니까 중요하게 생각하고 삶의 질은 물론, 집값 상승에도 영향이 있어요. 조경 만족도가 아주 높아요."-개포자이 프레지던스 입주민 박모 씨(40세)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이른바 '개포동 아난티'로 불리는 이곳은 실제 가평 아난티 리조트 콘셉트를 참고로 단지 안을 생태공원처럼 꾸며 호평을 받고 있다. 이 단지는 1개의 중앙광장, 8개의 테마숲과 함께 9개의 테마가든을 조성했다.
지난 17일 오후 기자가 찾은 이곳은 찬바람이 싸늘한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손을 잡고 산책을 나온 가족부터 단지 곳곳을 뛰노는 어린이들, 자전거를 타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나선 사람들까지 눈에 띄었다.
집 내부 인테리어는 입주민의 몫이지만 비슷한 입지 내에서 아파트 경쟁력을 높여주는 요소는 단연 조경이다. 조경은 입주민의 거주시설을 제외한 전체 환경디자인을 뜻한다. 나무와 꽃을 심는 식재 공간부터 단지 내 잔디, 광장, 놀이터, 산책로, 조명 등이 모두 조경으로 분류된다. 입주민들이 문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누리는 모든 것이 조경이다 보니 높아진 수요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특화한 단지가 강세를 보인다.
실제 부동산R114의 '내 집 마련에 대한 수요자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아파트 구입 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브랜드(40.6%)에 이어 조경 및 커뮤니티 시설(20.8%)이 2위로 꼽혔다. 단지 규모(19.9%)나 실내 평면 구조(18.0%) 등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다. 이 조사는 올해 3월 전국 5046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또 주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25 미래 주거 트렌드', '미래 주거 선택 요인' 조사에서 공원, 녹지와 같은 '쾌적성(33%)'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나타났다. 이는 아파트 조경이 단순한 장식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입주민의 건강과 환경, 라이프스타일 등을 반영하는 조경 트렌드에 대한 입주민의 니즈를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진행 중인 신축 단지들의 '조경 특화' 경쟁이 치열하다. 건설사들도 조경을 하나의 BI(Brand Identity·기업정체성)로 가져가면서 화단에 나무와 꽃을 심는 수준을 넘어 개별 단지와 건설사를 상징하는 특화상품으로 조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건설사들은 기존 수행한 특화조경과 각종 수상경력을 내세워 수주전에 활용하기도 한다.
개포자이 프레지던스는 대지면적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7.8%를 조경 면적으로 활용했고, 생태면적률 역시 46.3%가 적용돼 도심에 위치한 단지의 오염도를 낮추고, 기후변화에 대응함은 물론 생물의 다양성을 증진할 수 있도록 계획됐다. 대모산에서 양재천까지 주변 녹지의 흐름을 연결하기 위한 다양한 유형의 수경시설과 수목을 테마로 조성됐다. 단지는 자연 친화적 디자인으로 지난해 '대한민국 조경대상' 환경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단지 한 가운데 단차를 활용해 대모산에서 양재천까지 연결되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개포오름'을 산책하던 주민 이영희 씨(69세)를 만나봤다. 이 씨는 "테마별로 여러 가지 산책로 등이 꾸며져 있는데 단지를 지날 때마다 힐링이 된다"면서 "멀리 가지 않아도 차를 마신다던가 산책하는 등 단지 내에서 모든 게 가능하단 게 좋은 점"이라고 설명했다.
개포자이 프레지던스에서부터 20여분을 걸으면 나오는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도 조경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현대건설이 공급한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2블록은 지난 10월 도시정비사업 분야 최초로 대한민국 조경 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2블록은 단지 내에 약 6만5000㎡ 규모의 도심 숲을 조성해 탄소배출 제로를 시도했다.

단지는 정밀한 분석과 입주민 소통을 바탕으로 비움과 채움,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고려해 연속 배식(나무나 풀을 배치해 심는 방법) 기법을 적용한 조경을 조성했다. 시간에 따라 꽃과 나무, 과실 등이 변화하는 작가정원, 숲속 쉼터에 온 듯한 우드 소재의 오두막으로 시선을 끄는 티하우스, 숲속 놀이터와 쉼터, 그리고 수경시설까지 갖춰졌다.
또 HDC현대산업개발이 선보인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조경 시그니처파크는 2024년 굿디자인어워드 환경 디자인 부문에서 우수디자인(GD)상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 특색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담은 15만㎡ 규모의 대단지로 2개의 대규모 시그니처파크와 5곳의 테마정원이 조성됐다. 원더풀메도우와 드라마틱써클은 수경시설과 미술작품이 설치돼 있으며, 입주민의 커뮤니티 공간인 아이파크 라운지, 파빌리온, 작가정원 등이 어우러진 장소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황원욱(40세) 씨는 "조경이 잘 돼 있어서 따로 공원을 안 가도 산책하기 좋고 리조트 같은 느낌이라 만족도가 좋다"면서 "젊은 사람들이나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다 새 단지를 찾는 것도 조경이나 커뮤니티 시설 때문이 아닐지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모 씨(62세)도 "시멘트벽만 있는 아파트보다 예쁘게 꾸며놓은 자연에 친화적인 이런 환경이 정서적으로 좋다"면서 "앞으로 조경 특화 설계는 더욱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역시 자연미를 살린 조경으로 유명하다. 단지 내 '네이처갤러리' 디자인 철학을 처음으로 접목한 '가든베일리'와 '그린 캐스케이드' 등이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2024'에서 각각 대상과 금상을 수상했을 정도다. 최근에는 지역 대장주로 떠올라 전용면적 84㎡가 60억원에 거래되면서 지역민은 물론 관광객까지 단지 내부를 구경하러 올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롯데건설도 입주민들의 주거 만족도와 문화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조경에 차별화를 두고 있다. '2023 굿디자인 어워드'에서 아파트에 적용하는 4개 품목이 우수디자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이 중 조경 상품으로는 '신반포 르엘'에 적용된 곡선이 아름다운 연못과 꽃나무들로 화사하게 꾸며진 수경시설인 '웨이브폰드'가 있으며, '롯데캐슬 리버파크 시그니처'에 적용된 수경시설과 연계돼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티하우스인 '카페아트리움'이 있다.
특히 신반포 르엘은 단지 입구에 문주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특수형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롯데건설은 고급화된 조경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등 각기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중 우수한 수형의 나무들, 단지에 부합하는 나무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건설사들이 특화 조경에 힘을 쓰는 이유는 일단 조합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홍보하는 데 조경만큼 비용 대비 효과가 큰 게 없다는 점에서다. 전체 사업비에서 조경이 차지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을 뿐만 아니라, 조경은 전체 공정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수행하기 때문에 남는 분양 수익으로 특화가 가능하고 조합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공사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마감재로, 마감재를 뭘 넣느냐에 따라 공사비가 천지 차이인데 마감재나 세대 내부 인테리어는 유행을 타게 된다. 5년만 지나도 구형이 된다"면서 "반면 조경, 커뮤니티 등을 포함한 외관은 한번 만들면 고칠 수가 없기 때문에 조경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더 큰 임팩트가 있다. 때문에 조합들도 조경에 초점을 맞춰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