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관치금융'과 헤어질 결심
[데스크 칼럼] '관치금융'과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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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들이 금융 당국 주문에 가계대출을 옥죄는 모습이다. 서민·자영업자·중소기업 등이 빚에 의존하는 구조적 문제가 대한민국의 한계치로 작용할까 전문가들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해법은 요원해 보인다. 

우선 가계대출 증가세에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증가세를 낮추기 위해 금리 인상에 발 벗고 나섰지만 폭발적인 대출 수요를 틀어막기에 역부족하자, 당국은 급기야 주택담보대출 만기 단축과 한도 축소 등 추가 대책을 내놓았다. 

앞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은 지난 7월 이후 22차례 금리를 올렸지만, 오히려 8월 들어 주담대가 6조8000억원 이상 늘어나는 등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오는 9월 대출한도 축소 조치인 '2단계 스트레스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에 앞서 막차 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8월 금융권 가계대출이 10조원 가량 불어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이게 현실화된다면 2020년 11월 증가폭(9조4195억원)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금융 당국 역시 8월 가계부채 증가폭이 10조원을 넘지 않더라도 6,7월 수준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고삐 풀린 대출 수요는 정부의 '정책 엇박자'가 초래한 측면이 크다. 금융 당국은 '2단계 스트레스DSR' 시행 일정을 지난 7월에서 오는 9월로 돌연 연기하면서 시장이 오판하도록 빌미를 제공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과 자영업자 부담완화 등을 위한 조치였지만, 정부가 대출 막차 행렬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사실 올해 6월부터 가계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았지만, 금융 당국이 이런 경고음을 흘려버렸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규제를 풀고 친화적인 정책을 쏟아내며 가계대출 수요를 자극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돈 잔치', '은행은 공공재' 발언 이후 금융 당국 역시 시중은행에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며 보조를 맞췄다. 

신생아 특례대출과 함께 서민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돕고, 이자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특례보금자리론도 아파트값 상승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1년 간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특례보금자리론 중 신규 주택구매 용도로 공급된 건수는 10만2671건(25조8126억원)으로, 작년 전체 아파트 매매 건수(41만1812호)의 '4분의 1' 수준에 달했다.

올 초엔 은행권 주담대 금리 경쟁 촉진 등을 통해 가계 이자부담 완화를 위한 비대면 주담대 갈아타기 시스템 구축에 은행권 참여를 독려하면서 대출 수요를 자극했다. 

실기한 금융당국의 요구에 은행들이 연이어 대출금리 인상에 나섰지만, 한번 불붙은 부동산 시장을 진화하기엔 한계가 분명하다. 정부가 저금리 정책대출을 권장하는 등 사실상 가계빚 증가를 조장하다가 뒷북을 치며 '비난의 화살'을 은행권으로 돌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금리를 통해 집값과 대출 수요를 통제할 수 있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고수하는 한 시장 왜곡 현상은 언제든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피해가 고스란히 서민 등 실수요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은행들이야 '관치금리'로 커진 예대마진율(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 덕을 톡톡히 보고 있지만, 돈이 필요한 서민들은 은행채 등 시장금리 하락에도 전보다 높은 대출이자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관치금융'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애먼 서민들의 피해는 언제든 반복될 수밖에 없다. 관치금융 역시 또다른 형태의 '행정 편의주의'일 뿐이다. 금리 외 종합적인 경제 대책과 타이밍이 절실해 보인다. 특히 미래국가성장을 염두에 둔 장기적이고 구조적 대응이 안보이는 게 아쉽다. 단타 대응은 한계가 있다.  

김창남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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