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물가-경기 사이서 '샌드위치'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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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물가관리 최우선"…기재부 "경기악화 선제대응"

[서울파이낸스 채선희기자] 올해 한국은행의 딜레마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관리에 비상등이 켜진 가운데, 기획재정부가 경기위축에 대비한 선제 대응에 나서면서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4일 정부 및 금융권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새해 첫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관계부처 장관들에게 '물가안정'을 위한 확고한 의지를 전달하는 한편, '물가관리 책임실명제' 도입계획을 밝표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신년국정연설에서도 물가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물가관리 책임실명제'란 주요 생필품마다 담당 공무원을 정해 관리하게 함으로써 정부가 정한 상한선을 넘지 않도록 물가를 관리하는 정책이다.

이와관련 일각에서는 시장의 원리를 무시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물가안정에 대한 이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피력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와관련 당국 물가분석 관계자는 "가격을 관리 통제하자는 내용인데 잘되면 변동성을 줄일 수 있지만 시기조절이 안되면 오히려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원가 등으로 가격을 올려야 하는 시기가 물가가 상승하는 시기와 맞물린다면 변동성이 매우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물가안정을 최고의 기치로 삼고 있는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졌다. 표면적으로는 독립기관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방향에 어떤 식으로든 화답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문제는 기획재정부의 경우 물가안정과는 상반된 기조로 정책방향을 설정했다는 점이다.

최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신년사를 통해, "작년보다 올해 경제여건이 더 어렵고 불확실하다"며 "유럽 재정위기의 경우 상반기에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기획재정부는 새해 첫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3단계의 비상계획으로 위기에 대처할 것이며 상반기에만 전체 재정의 60%(165조원)를 투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풀겠다는 의미로 물가안정과는 다소 상반된 행보이다. 

이 때문에 한은의 경우 어떠한 포지션을 택하든지 비판의 목소리를 비켜가기는 어렵게 됐다. 물가안정 차원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경기악화를 외면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반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물가안정이라는 본연의 책무를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또 지난 6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해 온 만큼 금리를 잡아둘 경우 '한은의 역할론'이 재차 불거질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은은 지난해 이미 물가목표 한계치를 6번이나 초과해 사실상 물가관리에 실패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며 "일단 오는 13일로 예정된 금통위가 올해 금리운용의 방향성을 가늠케 해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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