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나고야의정서가 17일 국내에서도 발효됐지만 제약사들은 별도 지침을 마련하지 못한 채 해외 동향만 살피고 있다. 일부 제약사들은 2014년부터 별도 팀을 꾸려 대응책을 찾았지만, 마땅한 전략을 수립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거래 국가의 법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비준 국가들이 구체적인 법령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 나고야의정서와 관련해 국립생물자원관 유전자원정보관리센터에서 설명회를 열었지만, 담당자도 다른 국가의 시행령이 언제 마련될지 몰랐다"고 말했다.
◆ "천연물의약품 국한"…대비책 미흡
나고야의정서는 생물 유전자원 이용에 따른 이익을 자원 제공 국가와 이용 국가가 공정하게 나누도록 하는 국제협약이다. 생물다양성 보전과 지속가능한 생물자원 이용에 기여하기 위해 마련됐다. 2010년 일본 나고야에서 채택됐고, 2014년 발효됐다.
2014년 국내 제약사 가운데 녹십자, 동아에스티가 대응팀을 꾸렸다. 이들은 천연물의약품을 취급하고 있다. 다른 제약사들은 화학 합성의약품을 주로 생산한다는 이유로 적극 나서지 않았다. 한 상위 제약사 관계자는 "우리는 화학 원료를 주로 취급하기 때문에 이번 협약 대응 논의가 크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다수의 제약사들이 바이오 분야에 뛰어들고 있으며, 생약·한방재 원료까지 포함되는 만큼 위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천연물의약품은 식물과 동물, 광물 등을 이용해 만든다. 국내에는 동아에스티의 위염 치료제 스티렌정과 기능성소화불량증 치료제 모티리톤정, 녹십자의 관절염 치료제 신바로캡슐, SK케미칼의 관절염 치료제 조인스정, 안국약품의 기관지염 치료제 시네츄라시럽을 포함해 총 8개 품목이 있다.
일부 제약사는 3년 전부터 대비책을 찾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내지 못했다. 거래 국가에서 세부적인 시행령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논의는 해왔지만, 구체적 시행령이 없고 실제 사례까지 나와야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공통된 입장이다.
천연물의약품을 생산하는 한 제약사 관계자는 중국을 예로 들며 "나고야의정서가 지난해 9월 발효됐기 때문에 이익공유를 강제할 권한이 생겼지만, 근거가 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아 현재 시점에서는 실효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나고야의정서 발효 이후 기업에서 참고할만한 사례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며 "실제 사례가 나와야 구체적이고 새로운 대안 마련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 제약사보다 1년 늦게 팀을 마련한 화장품 회사 아모레퍼시픽이 향후 이익 공유로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까지 수립한 것과 비교하면 다소 소극적이라는 평가다.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 한시적인 크로스펑셔널팀(CFT)을 꾸렸고, 월 1회 국제적 법규 변화와 생물자원 특허 대응 회의를 열면서 시나리오까지 만들었다. 생물자원 자산화를 위해 국화꽃의 일종인 '흰감국'을 복원하고, 2011년부터는 토종 콩 연구도 시작했다.
◆ 국내사 원료 의존도 큰 中, 강력 조치 예고
대다수의 천연물의약품 제조사들은 중국으로부터 원료를 수입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선 많은 양을 국내에서 모두 소화할 수 없는 데다 중국 원료 값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약재 역시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된다. 따라서 업계는 중국과 이익공유 문제가 해결된다면, 나고야의정서 문제도 절반 이상 해결됐다고도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강력한 조치를 예고하면서, 국내 업계 부담이 더 커질 전망이다. 중국은 외국 기업이 중국의 생물유전자원을 이용할 때 반드시 자국 기업과 합작하고, 이익공유와 별도 기금 명목으로 연간 이익금의 0.5∼10%를 추가 납부해야 한다는 조례를 예고했다. 이를 위반하면 최소 5만위안(약 850만원)에서 최대 20만위안(약 3400만원)까지 벌금을 물리는 방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로 순탄치 않은 대중 관계를 고려하면 우려는 더 커진다.
기업이 지켜야 할 의무사항은 1년간 유예돼 내년 8월17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는 유전자원 접근과 이익공유에 관한 정보를 조사·관리하기 위해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에 유전자원정보관리센터를 두고, 생물자원관은 정보공유체계를 구축·운영하게 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기업들의 대책 마련을 위해 직접 찾아가 컨설팅을 해준다. 교육교재도 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