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도 4%대 회복···금리 압박 요인 많아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미국의 통화긴축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출금리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달 5대 시중은행에서만 가계대출이 1조원 넘게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금리가 오르면 이자부담이 커지는 만큼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인데, 주택시장 회복 기대감이 커지면서 이같은 긴축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최근 가계빚 급등의 주범으로 50년 만기 주담대와 특례보금자리론 등을 지목하면서 은행권들이 관련 상품의 판매 조건을 강화하거나 상품 판매를 중단하고 있다. 이처럼 당국의 '대출 조이기'가 본격화되면서 막차를 타기 위한 실수요자들까지 한꺼번에 몰리는 것도 가계대출이 불어난 데 한 몫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이날 기준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혼합(고정)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4.00~6.425% 수준이다. 지난달 말(연 3.83~6.25%)과 비교하면 금리 상단이 0.175%p(포인트), 하단이 0.17%p 높아졌다.
은행별로 보면 하나은행의 주담대 혼합(고정)금리가 연 4.925~6.425%로 상단이 가장 높았다. 뒤를 이어 △신한은행 연 4.80~6.10% △우리은행 연 4.25~5.45% △국민은행 연 4.00~5.40% 등이었다.
주담대 금리가 오른 것은 기준으로 삼는 은행채 5년물금리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은행채 금리는 최근 미국·한국의 긴축 장기화 전망과 은행채 발행물량 증가 등의 영향으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
은행채 6개월물도 함께 오른 영향으로 이를 기준으로 하는 주담대 변동금리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4대 은행의 이날 기준 주담대 변동금리는 연 4.27~7.099%로, 지난달 말 대비 상단이 0.13%p 올랐다. 은행별로 보면 △하나은행 연 5.599~7.099% △신한은행 연 4.46~5.77% △국민은행 연 4.27~5.67% △우리은행 연 4.35~5.55% 등이다. 이 중 최고금리인 7.099%는 지난해 12월(연 7.603%) 이후 약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출금리 상승세는 최근 은행들의 정기예금 인상 추세에 맞춰 가팔라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4월 기준금리(연 3.5%)를 밑돌던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4%대로 반등하고 있다. 시장금리가 오르는 데다, 지난해 하반기 연 5% 금리로 운영하던 정기예금 상품의 만기가 돌아오면서 재예치를 위한 고금리 전략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 소비자 포털에 따르면 19개 은행 정기예금 상품 가운데 1년만기 최고금리가 연 4.00%를 넘는 것은 SC제일은행 'e-그린세이브예금'(4.20%), 전북은행 'JB123정기예금'(4.20%), 제주은행 'J정기예금'(4.10%) 등 10개에 이른다.
NH농협은행 'NH올원e예금'(3.95%), 신한은행 '쏠편한 정기예금'(3.95%), 우리은행 'WON플러스예금'(3.92%), 국민은행 'KB Star 정기예금'(3.90%), 하나은행 '하나의 정기예금'(3.90%)을 비롯한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최고금리도 4%에 육박하고 있다.
긴축 장기화, 예금금리 인상 등 대출금리 상승 요인이 산적한 가운데, 더 우려스러운 부분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이달 21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82조4539억원으로, 지난달 말(680조8120억원)보다 1조6419억원 늘었다. 5월 이후 5개월 연속 증가세일 뿐 아니라, 20여일 만에 이미 8월 증가폭(1조5912억원)을 넘어섰다.
대출 종류별로는 주담대가 1조8759억원(514조9997억→516조8756억원) 불었다. 이달 들어 50년 만기 주담대 연령제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기준 조정 등 대출규제가 한층 강화됐는데도 여전히 주택 관련 대출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5대 은행의 흐름으로 미뤄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4월 이후 9월까지 6개월째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은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과 금융권 가계대출은 각 6조9000억원, 6조2000억원 늘었다. 은행권 증가폭(6조9000억원)은 2021년 7월(9조7000억원) 이후 2년1개월 만에 가장 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은행권 역시 정부의 대출규제 강화 정책에 발맞춰 가산금리 조정 등을 통해 대출금리를 더욱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4일 기자간담회에서 빚을 내 부동산에 투자하는 행태에 대해 "금융 비용이 한동안 지난 10년처럼 거의 0%, 1∼2% 정도로 낮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지 고려하며 투자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