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1위 한토신, 실적저하에 신용등급 강등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부동산 신탁사들의 실적과 신용도가 악화되고 있다. 특히 시장이 호황일 때는 수익성에서 효자 노릇을 했던 책임준공형 토지신탁 사업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면서, 자금 조달력을 더 악화시키는 모양새다.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요 부동산신탁사 14곳의 지난해 연간 당기순이익 총합은 249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년도인 2022년 연간 당기순이익 총합(6426억원)과 비교하면 61.2% 급감한 규모다.
회사별 실적을 보면 KB부동산신탁과 교보자산신탁은 지난해 연간 각각 841억원, 29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들 회사는 2022년에는 각각 677억원, 30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었다. 이 외에도 △무궁화신탁(-89.3%) △코람코자산신탁(-89.1%) △대한토지신탁(-55.4%) △코리아신탁(-47.0%) △우리자산신탁(-46.6%) 등 9개사는 지난해 연간 당기순이익이 1년새 급감했다.
14개사 중에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전년보다 늘어난 곳은 대신자산신탁, 한국투자부동산신탁, 한국자산신탁 3곳에 불과했다.
업계는 그동안 신탁사 수익성 제고에 기여했던 책임준공 관리형 신탁 방식의 사업이 부실해지면서 관련 대출채권 손실이 대거 반영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신탁사별 실적 차이는 주로 대출채권 관련 손실에서 나타났는데, 책임준공 관리형 신탁에서의 대손 반영이 컸다"면서 "이를 중점적으로 수주해온 KB·교보자산신탁의 지난해 순손실 전환이 이를 방증한다"고 말했다.
신탁사의 사업 형태는 통상 신탁사가 사업비를 직접 조달해 건물을 짓는 '차입형 토지신탁'과 신탁사가 자금 차입에 대한 책임은 부담하지 않고 명목적인 사업시행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관리형 토지신탁'으로 구분된다.
이중 관리형 토지신탁(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은 신탁사가 대주단에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 불가항력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약정된 기한 내 공사 완료·사용 승인·준공 인가를 받겠다고 책임준공확약을 제공한다. 담보력이 낮은 오피스텔 등 비(非) 아파트의 비중이 크고, 자체 신용도가 낮은 지역 중소건설사가 시공사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의 금융사들이 대주단을 구성해 신탁사의 신용을 담보로 시행 주체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공급한다. 차입형 토지신탁에 비해 위험 발생 빈도가 낮기 때문에 신탁사는 그간 적은 자기자본으로도 많은 수주를 따낼 수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부동산 경기 침체기에는 사업 부실 위험이 커지면서 신탁사들에 큰 압박으로 돌아오게 된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신탁사 14개사의 신탁계정대여금은 지난해 말 기준 4조9000억원으로 집계돼, 1년 전(약 2조6000억원)보다 88% 급증한 상태다.
한신평은 "신탁계정대여금은 사업성이 저하된 책임준공 관리형 개발신탁 사업장이나 분양 성과가 저조한 차입형 개발신탁 사업장에서 주로 발생한다"며 "신탁사가 사업장에 대여금을 지급하기 위해 외부에서 조달하는 차입부채 규모도 빠르게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탁사의 실적 저하는 신용등급 강등과 그로 인한 자본 조달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신평은 자산총계 기준 업계 1위인 한국토지신탁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강등했다. 그 직후 한국토지신탁은 총 1000억원을 모집하는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매수 주문량이 380억원에 그치는 미매각을 겪었다. 최근 연내 금리 인하를 앞두고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높은 회사채가 인기를 끌며 비우량 기업까지 수요예측에서 잇달아 흥행했던 분위기를 감안하면 신탁사에 대한 투자심리 위축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신평은 KB부동산신탁에 대해 "신탁계정대여금 증가와 대규모 대손비용 인식에 따른 자본감소 영향이 일시에 인식되며 부채비율이 200%(지난해 말 기준)를 웃도는 상황"이라며 "재무구조가 급격히 저하된 점을 감안해 향후 중점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