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망한 사례만 좇아서야
[홍승희 칼럼] 망한 사례만 좇아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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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이 뒤숭숭하다. 야당에서는 정부가 현 정권수호를 위해 계엄령을 준비중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고 또 대통령의 발언이나 근래 이루어진 내각 인사를 비롯해 그런 의심을 살 만한 여러 정황들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아직은 '설마 요즘시대에?'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런 이들조차 워낙 현 정부가 상식을 벗어난 선택을 이어온 터라 '그럴지도 몰라'라는 걱정을 떨치지는 못한다. 만약 이 의심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간신히 선진국 문턱을 밟은 한국이 그야말로 후진국 정치로 퇴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어서 이만저만 심각한 게 아니다.

정치적 퇴행은 단지 정치에만 국한하는 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방위적인 사회적 퇴보를 초래한다. 후진 정치를 하는 나라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고 계엄령과 같은 살벌한 분위기는 사회적 활동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전국민의 심리적 위축은 불가피하게 창의성을 요하는 모든 분야의 위축을 불러온다.

물론 정권이 불법한 계엄령을 밀고 나간다고 군부가 꼭 이에 호응하리라 지레 짐작할 필요는 없다. 군도 2차에 걸친 군부독재의 좋지 못한 끝을 보면서 스스로 쿠데타를 도모하지 않을만한 분위기는 자리 잡았고 그런 만큼 일개 정권의 옹위를 위해 불법적 명령에 이용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당이 계속 이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섬으로써 비밀스럽게 진행돼야 할 계엄선포는 일단 힘이 빠졌으니 그만큼 위험도가 낮아졌다고 볼 수도 있다. 야당의 발빠른 공개 경고로 시민들의 감시도 강화될 테고 군부도 뭔지 모르고 끌려 다닐 일은 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보다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 더 심각한 문제는 의료대란일 수 있다. 이런 난국에서 가장 위협을 느끼는 이들은 당장 장기간 치료를 요하는 병을 치료 중인 환자와 그 가족은 물론 어린 아이들이나 노인이 있는 가정의 가족 구성원이라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불안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처음과 달리 상황이 장기화할 뿐만 아니라 갈수록 악화되기만 하니 보수니 진보니 하는 진영논리도 무색해지고 있다. 애초에 의사 정원 확대는 진보 쪽에서도 추진했던 일이지만 의료계와 조율이 필요한 요인들이 많아 미뤄진 일인데 그간의 과정을 무시하고 대책 없이 밀어붙이다보니 다행히 수습이 된다 해도 그 후유증은 매우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이 의료대란을 야기한 이유에 대해서도 음모설이 나돌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뚜렷한 증거가 없어 음모설이라고 말하지만 현 정권의 성향으로 이를 믿는 이들도 있어 보인다. 

민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현 정부가 전면적인 의료민영화 나아가 의료보험 민영화까지를 목표로 사건을 의도적으로 키운다는 의심이기 때문이다. 매사 긍정적인 이들은 여전히 ‘설마 국민 생명을 볼모로 그런 일을?’ 하고 반신반의하기도 하지만 점차 의심은 커져가고 있다.

정말 정부가 그런 일을 도모한다면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세상에 자랑할 대표적인 시스템인 선진의료 체계가 붕괴되고 국민의 건강권을 자본권력에 팔아넘기는 일이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평균수명이 전 세계 40위권에 머무는 이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민영화되어 비싼 의료보험료와 더불어 중산층도 감당하기 힘든 의료 서비스 비용일 것이다.

이런 문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일본이 30년 전 부동산시장 붕괴를 막고 기업도산을 줄여보겠다고 좀비기업들까지 지원해가며 산업체질 개선의 시기를 놓쳤던 전례조차 답습하려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들, 장기간의 독재정치로 나라 경제가 거덜 난 몇몇 나라들처럼 기득권 강화를 위한 부자감세, 그로인해 구멍 난 재정을 추경도 아니고 국채 발행도 아닌 우체국 보험 적립금을 끌어다 쓰며 대처하는 구멍가게도 피할 편법 등 무수하다.

지난 달엔가 방글라데시에서 민중봉기로 4선 총리가 사퇴 후 도피한 일이 있었다. 반정부 시위대를 향한 발포로 사망자가 나오면서 규모가 커져 결국 정권 붕괴까지 끌어냈지만 첫 발단은 부자감세, 법인세 인하, 간접세 확대를 통한 서민증세 등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킨 것이었다.

쫓겨 난 하시나 전 방글라데시 총리는 이런 실망스러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올 1월 4선에 성공했다. 그동안 정보통제를 통한 입틀막에도 성공했다는 말이겠지만 결국 쫓겨나고 도망 중에 살인혐의로 기소까지 된 결말을 맞았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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