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이서영 기자] #대기업 L사 주주이자 한국어를 할 수 없는 외국인 투자자 A씨. A씨는 펀드의 대표로 주주총회 전날 L사 IR임원과 직접 만나 미팅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주총 날은 참석하지 못할 뻔 했다. 이유는 주주총회에 참석하려면 법적으로 주주인지 서류로 인증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법무법인 통해 인증서를 겨우 받아 들어가려 했지만 그러나 통역사는 주주가 아니라 들어갈 수 없다고 해, 사실상 주총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25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서울 여의도에서 '일반 주주와 외국인 투자자의 주주권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코스피 시가총액의 30% 넘게 보유하고 있음에도 주주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대표는 "외국인 주주의 의결권 마감은 주총일로부터 5영업일 전에 예탁결제원에 보고해야 한다"며 "직접해보니 의결권 자문사와 접촉해서 설명할 시간이 사실상 이틀밖에 되지 않아서 안건을 제대로 검토해서 투표를 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은 통상 주총 소집 공고 기한 최저선인 14일을 딱 맞춰서 공시한다. 이 마저도 대부분 장 마감 이후 공시되기 때문에, 의결권 대리 행사 권유 공시는 다음 영업일에야 이뤄진다.
예를 들어 1일 월요일 오후 5시 30분에 주주총회 소집 공시를 통해 주주총회는 14일 월요일에 개최 예정이라고 안내됐다면, 외국인 주주는 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5영업일 전인 8일 월요일에는 예결원에 보고해야 한다.
의결권 자문사는 외국인 투자자를 위해 주총 안건을 분석해 의견을 전달해야 하지만 리포트를 작성 등을 고려한다면 실제로 할당되는 시간은 2~4일, 불과 3영업일에 그친다.
행동주의 펀드 역시 외국인 투자자에게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의결권 행사 권유 공시 후 2거래일이 지난 다음에야 접촉할 수 있어 시간이 빠듯하다.
구현주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도 절차 간소화에 대해 의견을 내놨다.
그는 "현재 상임 대리인을 통한 외국인 주주의 권리 행사가 의무인데, 현대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절차인지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며 "또한 예탁결제원을 통한 의결권 행사를 위한 5영업일 기준이 너무 짧기 때문에 업무 규정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테파니 린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의 한국·싱가포르 리서치 연구원은 국내의 촉박한 주주총회 시행 일정을 해외 사례와 비교했다.
현재 글로벌 다수의 국가는 주총 소집공고 기한을 21일로 정하고 있다. 반면 국내의 경우 해외보다 소집 기한이 일주일 가량 짧은데다, 올해 기준 상장사 97.2%가 열흘(3월 20∼29일) 사이에 주총을 개최하는 등 날짜가 집중돼있다. 기업을 설명하는 사업보고서는 주주총회 일주일 전 공시된다.
린 연구원은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하는 것이 최고지만, 이는 쉽지 않아서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표준 정관 개정이 필요하다"며 "소집 공고 기한을 28일로 늘리고, 사업보고서 등 주총 전 제출기한을 일주일이 아닌 3주 정도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만은 하루에 주주총회 여는 회사 수의 상한선을 뒀고, 싱가포르는 대형주는 주총 일자가 조율해서 겹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세미나 내용에 대해 기업거버넌스포럼 측은 법무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예탁결제원 등에 전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