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地思之하는 능력
易地思之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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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하자면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정도가 될 단어인 역지사지(易地思之)는 흔히 고사성어로 알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잘 쓰지 않는, 그래서 중국어 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적 한자어의 하나다.

따라서 이 말의 출처를 찾아내기도 애매하지만 억지로 엮은 전거(典據)는 맹자다. 요즘말로 공인된 자들이 어떻게 바른 처신을 했는지 사례를 들고난 후 "그들은 자리가 달랐어도 그리 했을 터"라고 덧붙인 말인데 현재 우리가 쓰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어떤 직책에 있던 그 직책에 합당한 바른 처신을 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역지사지라는 말의 전거를 맹자에서 찾는 것은 조선조 소중화주의자들의 견강부회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우리말 "입장 바꿔 상대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라"는 말을 한자로 쓰려다보니 생겨난 조선 식자층에 의해 만들어진 조어였을 개연성이 더 높다.

그런데 우리말로든 또는 우리식 한자어로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권유가 그리 극성인 이유가 무엇일지는 궁금해진다. 이 말은 결국 '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겠냐'고 자기 입장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자세에서 나올 법하다. 내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우리 사회 전반이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사회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남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으면서도 내가 상대에게 이해 받지 못하면 답답해져 서로 큰소리부터 나오기 십상인 조급증 사회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이해하라고 요구하면서 내가 남을 이해할 생각은 않고 있으니 같은 말을 쓰면서도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채 저마다 유리벽 속에 갇혀 소리지르는 모양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평적 소통의 미디어인 인터넷이 유독 한국에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비록 그 인터넷에서 마저 제 할말만 하고 쏙 빠져나가는 악플러들이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헌데 역지사지하는 자세는 상대에 대해  배려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지혜가 아니다. 하향식 유토피아인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수평적 의사소통으로 모여진 지혜로 가꾸어 가는 '우리들의 낙원'이 될 터이니 항의성 민원이 폭주하는 일 상대의 욕구를 미리 앎으로써 상대의 다음 행동이 예상되고 그에 대응할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상대의 입장에 서보는 일은 아무래도 중요하다.
 
상대를 배려하는 선한 뜻으로만이 아니라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인간 세상에서 남보다 먼저 미래를 예측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시간을 벌어 선수를 치는 데도 요긴하다. 상대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보는 상품 개발자라면 그것만으로도 개발 아이템이 절로 찾아질 터이다. 관리들이 그리 한다면 아마도 민원이 현재에 비해 80~90%는 줄어들지 않을까.

이즈음 나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들을 보면 그 정책을 입안한 관리들이 한 두 번이라도 부동산 시장을 발로 뛰어봤다면 저런 정책이 나왔을까 싶은 책상머리 아이디어들이 적잖다.

그게 어디 부동산 정책뿐일까. 운전자 눈에 비친 교통신호체계며 각종 도로표지판은 어떤가.

금융상품들은 또 금융소비자들의 욕구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한 발 물러서서 보면 금융기관 종사자들도 모두 금융소비자들인데 소비자일 때 다르고 상품개발자 혹은 영업자일 때 다른 입장을 갖고 그 자리에 맞도록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되물을 일이다.

혹시라도 스스로가 노동귀족이 되어 다수 서민들의  욕구에 눈높이를 맞출 수 없게 굳어져 버렸다면 역지사지하는 지혜는 더 아쉬울 터이다.

우리나라에는 중산층들도 잘 모르지만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돈벌이에 나서는 서민층 여성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한 화장품 메이커가 있다. 그 회사 창업주 사장은 화장품 외판원으로 사회 첫발을 내디딘 후 끝내는 자신의 회사를 세워 성공한 입지전적 여성이다.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는 서민층 여성들에게 그 회사 창업주의 전설은 곧 자신들의 꿈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성공한 CEO가 지금도 언제든 외판원들의 입장에 설 줄 안다는 점이다. 그래서 충성스러운 외판원들을 낳고 그들을 통해 전설은 오늘도 이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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