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명절 기간 중에는 평소와는 꽤 다른 관계들 사이의 소통이 일어난다. 번잡한 와중에도 직접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나누다보니 부모 자식 사이 혹은 형제자매 사이에서도 평소 전화통화하면서는 다 나누지 못한 이런저런 속사정들을 나누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명절 기간이 지나고 나면 친구들끼리, 지인들끼리 저마다의 가족들에게서 일어난 일들을 서로 교환할 기회도 생긴다. 올해는 필자 또한 그런 벗들의 자식 얘기를 나눠 들으며 그간 한걸음 떨어져서 듣던 한국사회 직장문화, 불안한 구조조정의 후폭풍 등 현안들이 어느 해보다 가깝게 다가오는 경험을 했다.

물론 내 자식의 고달픈 직장생활 얘기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곳만의 특수성으로 접어뒀었다면 이번에는 각기 다른 종류의 직장에서 젊은이들이 어떻게 고민하고 행동하는지를 좀 더 집약해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여느 해와는 달랐다.

그 중 사례 하나. 독립운동가 후손인 벗이 거제도 조선업체에서 일하던 아들과 며느리가 불안한 국내 조선업계의 상황에 고민하다가 일본 조선업체로 함께 직장을 옮겼다는 얘기를 조금은 부끄러운 듯 꺼냈다. 그러면서 가벼운 한숨과 함께 “언젠가는 국내 조선업계도 다시 좋아져서 돌아올 수 있겠지?”라는 말을 덧붙였다.

물론 그들 부부는 당장 발등에 불 떨어진 대우조선에 근무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가 함께 직장을 옮겼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조선업계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그동안 전망 없는 업종으로 치부하던 조선업계가 일본에서는 희망 있는 업종으로 되살아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국내 조선업계의 젊은이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며 인력을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와는 좀 다른 사례도 우리 사회의 직장 문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요구한다.

또 다른 벗에게는 건축 전공자들에게는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미국 회사에 근무하는 아들과 유학중에 만나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며느리가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강의를 하면서도 늘 국내 대학의 자리를 찾던 며느리가 한 국립대학 조교수로 자리 잡으며 귀국하게 됐고 그런 아내와 가까이 지내기 위해 아들은 다니던 회사에 아시아 근무를 신청해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명절에 만난 며느리가 고민을 털어놓더란다. 국내 대학에 출근한지 보름 만에 털어놓는 고민이 “어머니, 저 아무래도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봐요. 여기선 인간관계에 신경 쓰느라 연구할 틈이 없겠어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7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니던 필자는 유학파 교수들로부터 똑같은 고민들을 들었다. “국내로 들어오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학자로서의 삶은 포기해야 한다.”던 한 학자의 고백이 4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솔직히 듣는 순간 우리 사회에 대한 절망감마저 들었다.

당시 그 학자는 “아내들은 국내로 들어왔을 때 엮여들 가족관계에 고개를 흔들며 귀국하기를 거부하지만 그곳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남편들은 그래도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그 애들이 겪을 정체성의 혼란을 염려해 귀국하고자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런데 일단 귀국하고 나면 국내 대학에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관계들 속에서 그 관계를 정리하는 데 온통 신경 쓰고 시간 다 뺏기다보면 학자로서 연구할 시간은 고사하고 강의 준비하기에도 급급하게 된다.”며 웬만큼 각오하고 돌아왔지만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정치는 정치권에만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번잡하게 이루어지는 인간세상의 모든 ‘관계’들이 다 정치를 이룬다. 그 ‘정치’들이 우리 사회를 참 어렵게 만든다.

구조조정 파동은 정치권의 정치로 인해 야기된 문제이지만 직장에서 능력보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 또한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넘쳐난다.

효율과 생산성을 그토록 강조하는 한국사회에서 어쩌자고 전혀 생산적이지도 못하고 효율적이지도 못한 ‘정치과잉’ 현상들이 줄어들 줄 모르는가. 그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기회만 되면 ‘갑질’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