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홍승희 기자] 여러 정치 사회적 이슈를 극복 해소해나가는 데 공력을 쏟아 붓기 바빴던 새 정부가 드디어 가계부채 관리방안 마련에 나섰다. 8월 중으로 관계부처 합동으로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마련하라는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는 대변인의 결과보고가 있었다.

적어도 방안 마련에 석 달 가까운 시간이 주어졌다. 연구해서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과거 대통령의 한마디에 보름도 안 돼 재탕 삼탕 식의 무대책에 가까운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던 것과는 많이 다르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일단 간보기에 들어가는 관리들이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오랜 기간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는 걱정거리였다. 그마저도 탄핵정국에 이은 과도내각 시절인 지난 1분기 가계부채는 통계작성 이후 최대치인 1천359조7천억 원에 이르러 새 정부가 각별히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과도내각이 겉보기엔 무난한 운영을 해 나간 듯 보였지만 역시 많은 구멍을 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경기가 나아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수준의 가계부채 규모는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에 엄청난 걸림돌이 될 것은 자명한 일. 그렇다고 조급하게 접근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도 만만찮다. 양극화 심화의 결과인 동시에 원인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분배구조의 악화를 단시일 내에 개선하고자 서두르다보면 자칫 성장 동력이 손상되는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문재인 정부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더 이상 덮으려 애쓰지는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 지시 내용이 “소득분배 악화의 어려운 경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보고하고 중장기 구조적 대응방안을 별도 보고회의를 통해 다시 보고하라”는 것이었다는 점을 봐도.

대변인 발표에 따르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일자리 추경을 통해 소득분배 악화 추세를 저지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일자리, 소득주도 성장으로 전환하는 투트랙 접근방식을 보고하고 토론했다고 전했다. 이미 대선 과정에서 제시된 경제정책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경제는 구조조정을 위한 최적의 시간을 놓친 경험을 여러 번 했다. 박정희의 유신시절이 그 첫 번째 기회였으나 계획경제의 과실에 취해 같은 정책을 지속하고자 하던 정권의 오판으로 인해 기회를 날려버렸다. 어쩌면 장기집권과 독재로 인해 인기가 하락하고 있던 정권 입장에서 경제성장률의 점진적 둔화 현상마저 인정하기 두려웠을 수도 있지만 당시 가지고 있던 절대 권력을 이용해 재벌 중심 경제체제의 혁신적 전환을 추구했더라면 그렇게 대통령이 비명횡사하는 참극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회를 놓치고 이어 집권한 신군부 역시 오로지 ‘성장’에만 매달리다 보니 구조개혁은 갈수록 멀어져갔다. 당시 실세로서 집권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전두환은 재벌들을 불러모아놓고 “군인인 우리는 경제를 모른다. 따라서 경제는 당신들이 알아서 성장시켜라. 물가만 올리지 않으면 다 용인하겠다“고 했다는 말을 재벌기업 인사에게 들은 기억이 있다. 물론 김재익 당시 경제수석비서관에게도 ‘당신이 경제대통령’이라며 일임하는 자세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구조개혁을 할 의지도 지혜도 없었다. 물론 김재익 수석비서관에게서는 개혁의 싹도 보였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미얀마 아웅산 폭발사건으로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가 펼쳐보려던 정책의 실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 이후로도 개혁은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환경 등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했다. 더욱이 중간에 국가부도 위기를 IMF 구제 금융으로 넘기며 미국자본에 유리한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를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민주화 정부들은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견뎌내기에는 정치적 힘이 달려 개혁을 실천하기 어려운 한계를 경험했다.

국민의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의 20년 경험을 성찰하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보겠다는 문재인 정부에는 높은 국민적 지지가 뒤를 받쳐주지만 여전히 기득권의 함정은 늪을 이루고 있어서 개혁의 길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가계부채 대책은 그런 늪을 건너며 우리 사회의 경제구조 개혁까지 이르기 위한 지혜의 첫 출발이 되어야만 한다. 인사보다 더 어려운 시험을 무사히 잘 치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