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대형화-토종자본론'으로 여론 무마
시기적으로 '최적기' 판단...정공법 선택
[서울파이낸스 박민규 기자] <yushin@seoulfn.com>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13%에 대한 블록세일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확인된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나머지 지분(51%) 모두를 처분하기 위한 협상에 들어 갔다고 밝혀, 그 배경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은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더 이상 외환은행 지분을 쪼개 팔지 않겠다"면서 "외환은행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적 투자자를 찾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현재 몇몇 투자자와 접촉을 하고 있으나, 깊이 있는 협상이 진행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고 25일 통신은 보도했다.
■"지금이 찬스"...정공법 선택
론스타의 이같은 발빠른 행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더구나, 현재의 상황은 블록세일에 따른 '먹튀논란'으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
우선, 현재 론스타의 외환은행에 대한 대주주 자격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매각방침을 공공연히 밝히고 나선 것은, 좋게 보면 장삿꾼의 '두둑한 배짱'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국내 상황이나 여론을 무시한 오만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무엇보다, 대주주 자격과 관련 법정 소송중에 있고, 감사원이 금융당국에 대해 적격성 여부의 판단에 대한 재량권을 이임한 상태, 그리고 추가 지분매각을 막기 위한 가처분등 법적, 행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일부 여론을 아랑 곳하지 않겠다는 점에서 그렇게 받아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외환은행 지분 13%에 대한 블록세일과 관련, 금융당국이나 사법당국이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이번엔 '몸통'(경영권)을 팔기위한 협상에 들어 갔다는 것은, 이같은 분위기를 우롱하는 것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실제로, 비판 여론은 거세다. 론스타가 외환銀 지분 일부와 극동건설, 스타리스 지분 전량을 매각하거나 매각하기로 한데 대해 '먹튀'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와 시민단체, 그리고 일부 국회의원등이 외환銀 주식 매각에 대해 '매각 중지명령'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 여론 '찻잔속 태풍'...사실상 무시
투기자본감시센터는 23일 성명을 통해 "금감위는 이미 감사원이 ‘권유'한 바 있는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직권취소'를 지금이라도 결정해야 하며, 당장 주식 매각중지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도 이 보다 앞서 22일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지분을 일부 매각한 데 대해 금감위와 검찰 등 금융 및 사정당국이 '론스타 먹튀'를 구경만 하고 있다며, 검찰에 대해 론스타 지분에 대한 압수보전 명령 신청을 촉구한 바 있다.
법조계에서도 `외환은행 헐값 매수' 논란으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론스타의 이른 바 `먹튀'를 막기 위해서는 금융당국 등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금감원이 감사원의 직권 취소 권고를 받은 상태여서,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데도, 형사재판이 끝날 때까지만 기다리려고 하는 등 막연히 책임을 떠 넘기려 하는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론스타는 이같은 시민단체, 국회의원, 그리고 법조계의 '압박'은 큰 장애물이 안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나름의 치밀한 계산과 그에 따른, 자신감이 정공법을 선택한 배경으로 파악된다.
특히, 그레이켄 회장은 24일 머니투데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외환은행을 매각할 것이냐는 질문과 관련 "현재 진행중인 재판에 이 사안과 관련해 론스타가 직접 관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처벌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저희 법률팀에서도 현재 매각을 진행할 수 없는 법률적인 장애물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혀 론스타측이 현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더구나, 그는 당국으로 부터 승인을 받는 데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압박'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먹튀' 논란을 의식한 듯 앞으로 10년 이상 한국에서 투자활동을 지속하고 싶다는 입장과 함께, 외환은행 매각차익 가운데 1천억원을 사회환원하는 방안을 연구중이며, 스타리스와 극동건설 매각차익의 일부도 내놓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비판여론을 의식한, 이른바 '정서법'을 이해한 결과물로서의 제스쳐로 풀이 된다. 일종의 유화책을 병행하고 있는 셈이다.
■'정서법' 활용...서양식 '以夷制夷'로 비난 여론 돌파
그러나, 아무리 법적 해석의 문제나 비난 여론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리스크가 뒤따를 것이 자명한 데도 이를 감행한 것은 선뜻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유는 국내은행권의 복잡한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금융빅뱅'이 또 다시 회자되는 가운데, 국내 은행들은 리딩뱅크 입지 굳히기를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 덩치우기를 할 대상인 먹이감은 은 극히 제한돼 있다.
그렇다고, 해외로 나가서 돌파구를 찾기에는 아직 자신감과 역량 모두가 부족하다.
최고의 먹이감은 당연히 외환은행으로 압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론스타가 이같은 국내 금융권의 현실을 활용해 최대한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장애물이 있더라도, 지금이 최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외환은 지분 13%에 대한 블록세일에 농협과, 하나금융이 1%안팎의 지분을 매입한 상태. 이와관련,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외환은행 지분을 사들인 하나금융지주와 농협 등도 결과적으로 론스타가 막대한 차익을 챙기는 것을 도와준 꼴이라고 비판했지만, 해당은행들에게 지금 그런 비판의 목소리는 안중에 있을 리가 없다.
결국, 이 과정에서 드러난 국내은행들의 '덩치키우기'를 위한 '조급증'을 읽었고, 몸 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국내 투자자에게 빨리 넘기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매각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상황이 어려워 질 수도 있지만, 국내 금융권에 광범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은행 대형화 논리와 토종자본 육성론때문에, 결정적 장애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즉, 한국의 '정서법'을 터득한 론스타가 한 발 더 나아가 일종의 서양식 '이이제이'수법으로 마지막 관문을 돌파하려는 전략이 숨어 있는 것이라는 관측이다. 대형화나 토종자본론을 이용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여론을 잠재워 보겠다는 기발한 발상인 셈이다.
■한국에서 배운 '오만과 자신감'...'마지막 딜'(?)
더누가, 론스타는 이미 국내 투자에서 챙길 대로 챙겼다.
이 점이 과감한 베팅을 시도할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2003년 10월에 사들인 외환은행의 경우, 지난 2월 초에 받아간 배당금과 이번 매각대금을 합해 총 1조5천469억원, 투자원금(2조1천548억원)의 71.8%를 회수하고서도 현재 51.02%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해 5월에 인수한 극동건설에서는 이번 매각대금(6천600억원)과 유상감자, 배당 등을 통한 회수금액이 8천800억원으로 투자원금(1천700억원)의 5배에 달한다. 2002년 12월에 1천500억원을 투자해 사들인 스타리스는 3천23억원에 되팔았으니, 여기서 남긴도 돈도 역시 적지 않다.
이 것만으로도, 수년간 펼쳐진 한국에서의 론스타의 딜은 그야말로 '대박'이다.
금융당국이 이제와서 13%의 블록세일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불가능해졌고, 때문에, 론스타로서는 이제 몸통만 팔아 치우면 끝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세금도 한푼 안낼 듯..."현실적으로 부과 어려워"
다만, 걸림돌이 남아 있다면 세금문제다.
그러나 이 또한 별로 두려워 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13.6%와 극동건설, 스타리스 등을 매각해 20억달러(1조8400억원)가량을 회수했지만,국세청이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단단히 벼르고 있다지만, 국내 법조계의 의견은 현실적으로 세금부과가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일치한다. 론스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벨기에에 각각의 투자법인을 세운 뒤 외환은행(LSF-KEB 홀딩스) 극동건설(극동홀딩스) 스타리스(에이치엘홀딩스)의 주식을 사고 팔았는데, 벨기에의 경우 조세조약에 따라 비거주자의 유가증권 양도차익에 대해선 거주지국(벨기에)이 과세권을 갖기 때문이라는 것.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대부분은 조세조약에 이 같은 거주지국 과세원칙을 갖고 있다. 만약, 론스타의 '스타타워' 매각차익에 대해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거쳐 과세한 것처럼 이번에도 세무조사를 통해 벨기에 법인을 '페이퍼컴퍼니'로 판정하고 양도차익의 실질 귀속자가 미국에 있는 론스타 펀드(투자자)임을 밝혀낸다 해도, 역시 한·미 간의 조세조약에 의거해 주식양도차익은 소득자 거주지인 미국이 과세하도록 돼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미 챙길 만큼 챙긴 상황에서 론스타가 외환은행 경영권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상황이 다소 복잡해지더라도 크게 손해 볼 게 없다는 판단을 하고 밀어부치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론스타가 지금, 한국에서 수년간의 투자를 하면서 터득한 '오만과 자신감'으로 어쩌면 '마지막 딜'을 성사시키기 위해, 고도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민규 기자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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