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DC로 장기국채 매입…Fed 양적완화와 유사한 방식
사적 재산권·개인정보법 침해 가능성도 '상존'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이하 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발행해 민간 부문이 보유한 장기국채를 매입하면 경제활동 촉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김영식 서울대 교수와 김동섭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과장은 16일 발표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의 모델'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분석을 내놨다.
분석의 골자는 중앙은행이 CBDC를 발행하고 그 만큼을 장기국채로 매입하면 경제적 후생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CBDC가 있다면 중앙은행이 적정 이자율 수준으로 CBDC를 발행해 장기국채를 매입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CBDC가 은행계좌를 통해 간접적으로 발행되고 중앙은행은 실물화폐와 CBDC를 동시에 발행하며, 화폐와 달리 CBDC 보유자에게 단기국채와 같은 수준에서 일정한 이자를 지급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 결과 CBDC가 발행되면 중앙은행은 CBDC에 지급되는 금리를 조정해 단기명목금리를 조정할 수 있게 된다.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단기시장금리를 조절하는 현행 통화정책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이 경우 단기국채와 CBDC를 교환하는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효과가 없는 반면, CBDC 금리를 조정하면서 장기국채와 CBDC를 교환하는 정책은 유효한 것으로 분석됐다.
장기·단기국채가 동시에 유통되고 있는 상황에서 장기국채는 단기국채에 비해 시장선호도가 낮은데, 중앙은행이 CBDC를 발행하고 그 만큼을 장기국채로 매입하면 경제적 후생이 증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실시한 양적완화(장기국채 매입)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장기국채 매입, 단기국채 매도)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연구는 기존 경제이론 모형을 활용해 CBDC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한, 거의 최초의 연구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면서도 "이 연구가 실제 중앙은행이 CBDC를 도입해야 함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박선종 숭실대 교수, 김용재 고려대 교수, 오석은 한은 금융결제국 과장은 CBDC가 실제로 나오면 사적 재산권이나 개인정보보호법을 침해할 수 있다고 봤다. CBDC를 대상으로 한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재산권자의 동의 없이 실행될 경우 사적 재산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하면 개인, 기업이 돈을 맡긴 대가로 은행에 오히려 이자를 내야 한다. CBDC 발급을 위해 개설한 개인·기업 계좌에서 CBDC 발행을 독점하는 한은이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떼가게 되는 것이다.
또 한은이 CBDC를 직접유통하는 경우 개인정보 보호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상의 개인정보, 신용정보 및 금융거래정보가 침해되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인정보보호 대상자가 실물화폐를 예치하는 고객에서 CBDC를 보유한 전체로 급격히 확대되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가까운 장래에 일반 국민이 활용할 수 있는 CBDC를 발행할 계획은 없다"며 주의를 당부하고 "이번 연구는 통화정책 당국으로서 당행의 입장을 정립하고 학계, 국민에게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