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구광모 LG 회장이 '안정'보다 '조직변화'를 선택했다. 순혈주의를 깨고 최근 그룹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LG화학 수장으로 비(非) LG 출신의 신학철 미국 3M 부회장을 선임했다.
재계는 구 회장이 그룹의 모태인 LG화학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외부인을 영입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도 취임 첫해인 1995년 사상 최대 규모인 354명의 승진 인사를 했다.
구 회장의 이번 인사를 신호탄으로 연말에 있을 정기인사에서 세대교체가 대대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재계는 예상한다.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전면에 내세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신 부회장은 3M에서 글로벌 연구개발(R&D)과 사업개발, 마케팅 등을 책임지며 '혁신 전도사'로 불린다.
LG그룹은 그동안 공채 출신의 인재를 주요 요직에 등용하며 순혈주의를 지향했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1977년 럭키로 입사해 올해로 42년째 LG에 몸담았다. 세탁기 박사 조성진 부회장도 올해로 43년째 LG에 몸담고 있다.
외부 인사로는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던 이상철 전 LG유플러스 대표와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 두 명에 불과하다.
이번 인사로 만 40세 젊은 나이에 LG그룹 총수가 된 구 회장이 취임 첫해 변화보다는 안정에 초점을 맞춘 인사를 단행할 것이란 예상도 비껴갔다.
재계는 구 회장이 연말 정기 인사에서 부회장급 경영인 1~2명을 교체할 것이라는 관측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이에 따라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권영수 (주)LG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등 부회장급 전문 경영인 추가 교체 인사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다만 권 부회장과 하 부회장은 자리를 옮긴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아 이번 정기인사에서 교체될 가능성이 작다는 게 재계 일각의 시선이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구본준 부회장 역시 연말 인사를 통해 공식 퇴진한다.
거취 윤곽이 드러난 박 부회장, 권 부회장, 하 부회장을 제외하면 남은 부회장단은 조성진 부회장, 한상범 부회장, 차석용 부회장이다.
조 회장은 LG전자가 지난 2016년 4분기 영업손실을 내자 구원투수로 등판해 대대적인 조식쇄신으로 실적 반등을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차 부회장이 이끄는 LG생활건강은 지난해 사상실적에 이어 올해도 실적 갱신이 유력하다. 다만 차 부회장은 최장수 CEO라는 점에서 구 회장의 쇄신 기조와 어떻게 융합할지 주목된다.
실적 부진의 부담을 안고 있는 한상범 부회장은 중국의 액정표시장치(LCD) 공급과잉 등으로 판가 하락 문제와 유기발광다이오드 비중 확대 등 출구 전략이 절실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구광모 회장이 조직변화를 통해 LG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변화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