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집값과 소비
[홍승희 칼럼] 집값과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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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최근 조사통계월보에 실은 ‘주택자산 보유의 세대별 격차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고가 관심을 모았다. 한마디로 집값 올랐다고 소비가 별로 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 탄력성이 0.020으로 0,050인 미국 등 주요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다는 분석이다.

이 조사의 의미를 평범한 서민 입장에서는 잘 이해하기 어렵다. 물가가 올라서 자연스럽게 주택가격이 오른 것이라면 그 상관관계는 좀 더 명확해질 수 있지만 다른 물가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오른 주택가격이 소비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는 게 정상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주택을 소유한 부동산투기자들 입장에서야 집값이 오르는 게 소득의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를 늘릴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살고 있는 주택 한 채 뿐인 일반 주택보유자들로서는 주택가격 상승이 소비여력의 증가로 연결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지 않은가.

과거 부동산 경기가 한창 부풀어 오르며 몇 달 만에 봉급생활자 몇 년치 급여를 벌곤 하던 시절엔 꼬박꼬박 출퇴근하며 봉급에 매달리던 샐러리맨들이 초라해 보인 적이 있었다. 당시 흔히 들리던 말 가운데 하나가 ‘월급쟁이 남편은 낮에 김치찌개, 된장찌개로 점심을 때우지만 아파트 사고팔며 자산관리에 나선 아내들은 한낮에 호텔 부페에서 친구들과 한가로이 오찬을 즐긴다’는 것이었다.

당시 웬만한 중산층들은 너나없이 부동산 투기에 눈을 빛내며 뛰어들던 분위기여서 그런 말들이 돌았다. 그러나 지금 부동산 투기는 당시에 비하면 매우 소수가 참여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즉,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도 소비생활에 변화를 줄 여지는 대폭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번 조사결과가 보여주는 특징은 고령층의 주택보유가 늘면서 주택가격 상승이 소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고령층 주택보유자 중에는 임대 목적의 다주택 소유자가 늘었다지만 그들은 노후 대비를 위해 혹은 당장의 생활비 확보를 위해 임대용 주택을 추가 보유한 것이므로 주택가격 자체보다는 임대소득의 상승 여부가 오히려 소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령층의 주택보유가 늘어나는 데는 그 세대가 가진 부동산 불패신화의 기억 못지않게 마땅한 노후 소득 대책이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변 지인들을 봐도 노후 생활자금 확보방안은 대체로 부동산에 쏠려있다.

금융상품은 현재로서는 전혀 매력이 없다. 이달에 금리를 한차례 올렸다지만 앞으로도 저금리 기조는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고 투자상품들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도 그다지 높지 않다. 게다가 예대금리 차이는 미미하게나마 갈수록 벌어지는 추세여서 예금자를 끌어당길 요소가 거의 없다.

노후대비 수단은 뭐라해도 안전성이 최우선인데 경험상 부동산이 그래도 안전하더라는 고령층의 인식이 쉬이 사라질 가능성도 없다. 가격차익을 노린 부동산 투자는 위험성을 동반하지만 임대소득을 기대한 부동산 투자에는 상당히 안심하는 경향도 있다.

실상 부동산에 자산을 모두 쏟아 부었다가 경기가 얼어붙으면 그야말로 부동산 거지라 불릴만큼 생활의 궁핍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 세대여서 이들 고령층의 다주택 보유자 중에는 부동산 가격상승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이들도 적잖은 것으로 보인다. 매달 안정적인 세수입에 더 관심을 기울일 뿐.

이들 고령층 대부분은 연금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세대여서 더 부동산이 매력적일 터다. 70대 이상 국민연금 수령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고 있어도 대개는 그 액수가 매우 적다. 게다가 국민연금 고액수령자라 해봐야 생활비에는 한참 못 미친다. 고령층의 희망생활자금이라는 250만원의 절반을 좀 넘는 수준이면 많이 받는 편이다.

그렇다고 개인연금 상품이 썩 매력적이지도 않다. 금리가 너무 낮아서다. 주변에서 보면 상가혹은 개별점포 임대소득이 같은 금액을 연금보험에 넣었을 때에 비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러니 금융상품보다는 부동산에 매력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상가 점포 등은 경기에 민감해 수익성 변동이 크게 올수도 있지만 주택임대의 경우 세수입이 감소할 위험이 훨씬 적다. 그러니 다주택자가 되어 세금 더 내는 쪽이 이익이라 여긴다. 이래서 부동산 가격을 잡기도 어렵고 부동산 가격 상승이 소비활력을 가져오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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