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은행권도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구축해야"
우리은행 오픈API 공개···"개발자 중심, 모든 정보 공유"
[서울파이낸스 박시형 기자] 핀테크 기술 발전으로 촉발된 금융 혁신이 은행권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날 핀테크 개발자 포털사이트인 '오픈API 플랫폼'을 공개했다. 이 플랫폼은 개발자들이 우리은행의 대출, 환전신청, 해외송금, 이체 등 서비스를 은행 외부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와 API를 제공한다.
특히 오픈API 샘플코드를 깃허브(GitHub)'에 공개해 개발자들과 공유하기로 했다. 기존의 오픈API와 달리 은행은 개발자들의 피드백을 받아 요청에 부응해 새로운 API를 개발할 수 있고, 개발자들은 이를 활용해 또 다른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게 된다. 쉽게 말해 쌍방향 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
지금까지 은행권의 오픈API 공개는 많이 이뤄져왔다. 은행에 따라 수십~백여개의 오픈API가 개발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정보가 필요한 개발자보다는 정보 제공자인 은행 측의 편의나 필요에 따라 API 개발이 이뤄졌다. 그렇다보니 실제 활용으로 이어지는 일도 많지 않았다.
은행권이 오픈API를 기존 펌뱅킹 서비스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안이 검증되지 않은 핀테크 업체에는 기존 금융결제망을 열어줄 수 없으니 은행이 주도권을 쥐고 제공하는 오픈API만 이용하라는 식이었다. 수수료도 당연히 펌뱅킹 수준으로 매겨졌다.
핀테크업계 한 관계자는 "은행권에서 API를 열어준다고 해도 막상 확인해보면 쓸모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은행 측의 개발 편의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핀테크 기술의 발전으로 그 양상이 달라졌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토스'다. 이전에는 계좌가 개설된 은행의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야 자금이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토스는 은행과 무관하게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최근에는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금리나 상환방법 등 원하는 조건으로 본인에게 가장 유리한 대출상품을 찾을 수 있는 서비스도 내놨다.
이 두 가지 사례만으로도 그동안 은행이 독점적으로 제공해왔던 이체와 대출 서비스가 분화돼 서비스 제공에 대한 주도권이 핀테크 업계로 넘어갔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금융권의 무수한 서비스와 상품들이 핀테크 서비스로 속속 대체되고 있다.
빌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뱅크는 사라지고 뱅킹만 남는다"는 말이 현실화한 셈이다.
실제로 유럽의 소매금융시장은 2018년 고객별 이익이 2008년 대비 11%나 감소했다.
컨설팅업체인 AT 커니(Kearney)는 11년부터 오프라인 지점이 없는 네오뱅크(Neo Bank) 스타트업들의 1500만명 고객 유치로 기존 은행 고객이 200만명 이탈했다며, 유럽 리테일은행 중 10분의 1이 5년 내 문을 닫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존의 네오뱅크나 핀테크 기업과의 제휴·인수합병 등을 통해 고객이 추구하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업에 그치지 않고 쇼핑, 엔터테인먼트, 트래블 등 일상생활 전반을 다루는 원스톱(One-stop) 숍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희재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은행들도 위기의식을 가지고 고객 관점에서 고객이 원하는 상품 및 서비스를 적시에 편리하게 제공하는 역할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추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우리은행의 오픈API 플랫폼 공개는 이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우리은행은 돈관리 앱 '뱅크샐러드' , 캄보디아 전자지급결제사 '윙(Wing)', 그룹 내 계열사인 '우리카드' 등 비교적 규모가 큰 업체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디노랩(DinnoLab)' 입주 기업들에게 오픈API를 제공해 다양한 업종과 융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이욱환 우리은행 디지털전략부 차장은 "우리은행 오픈API는 수요자인 개발자 중심으로 구성돼 이름도 '디벨로퍼'"라며 "모든 기술적 정보, 필요한 데이터를 신청하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