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다시 시작된 ESS 화재···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 
[초점] 다시 시작된 ESS 화재···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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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 배터리 셀 이용한 '180회' 충·방전 시험 의미 있나
예산군 ESS 블랙박스 데이터 복원 중···화재 단서 찾을까
지난달 30일 충남 예산군 광시면의 태양광연계 ESS 설비에서 발생한 화재. (사진=예산소방서)
지난달 30일 충남 예산군 광시면의 태양광연계 ESS 설비에서 발생한 화재. (사진=예산소방서)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지난달 30일 충남 예산군에서 24번째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가 발생했다. 정부가 원인 규명과 안전강화 대책을 내놓은지 약 2개월만이다. 과거 일부 사고와 유사한 패턴으로 SOC(충전잔량) 상향이 화재 가능성을 높인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가운데 조사 미흡으로 또 다시 사고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앞서 정부는 특정사 일부 배터리에서 결함이 확인됐지만 실증시험에서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낸 바 있다. 현재 전국에서 가동 중인 ESS 가운데 일부는 SOC를 70%로 낮춰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추후 상향 가동 시 비슷한 유형의 화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배터리 SOC와 화재와의 상관관계는?

지난달 30일 오후 7시 18분께 충남 예산군 광시면의 한 태양광연계 ESS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오전 2시가 넘어서야 진화됐고 재산 피해는 5억2000만원으로 집계됐다. ESS 2기 가운데 1기(12.5㎡)가 전소됐고, 나머지 1기(12.5㎡)는 부분 전소됐다. 예산소방서에 따르면 화재 발생 당일 정부 측에서 화재 현장을 살펴봤고, 이번주 내로 합동감식을 실시한다는 예정이다. 

해당 사업장은 SOC를 70%로 하향 조정해 가동했다가 지난달 말 95%로 높였다. 사고 발생 당일 몇 시간 전부터 이상징후가 보인다는 PCS 업체의 통보가 있었고, 오후 7시 방전 시작 후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LG화학 배터리가 사용된 ESS 사업장 가운데 절반 이상은 SOC 원상복귀를, 나머지는 70%로 가동하고 있는 상태다. 앞서 지난 6월 조사위의 화재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LG화학은 순차적으로 SOC 상향 조정을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화재가 다시 발생하자 지난 6일부터 일부 사업장을 대상으로 재차 SOC 70% 하향 권고 공문을 발송했다. 

LG화학 관계자는 "현재 SI 업체, 관련 기관들과 함께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면서 "배터리 안전점검 조치를 완료한 후 고객사에 95%로 상향 조정해도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배포했고 이에 따라 사업주는 SOC를 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제적인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곳은 SOC 제한을 요청했다"면서 "여러 업체가 얽혀있어 하향 권고한 사업장과 별도 기준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국의 ESS는 사업장별로 4가지의 공통 안전조치와 방화벽 설치, 특별 안전조치 등을 실시한 후 이행 완료 결과서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해당 결과서에 따라 조치 완료됐는지 현장 확인 후, 조사위 후속 기구인 ESS안전관리위원회가 점검 결과에 대한 검토와 정상 가동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해당 사업장은 LG화학과 협의를 거쳐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와 SOC 상향 조정 등의 조치를 했고, 이 과정에서 시운전을 하던 중 화재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군 ESS 화재와 유사했던 사고는 지난 1월 15일 전북 장수에서 발생한 태양광연계 ESS다. 해당 발전소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LG화학에서 두 번에 걸쳐 안전 관련 점검을 실시했다"면서 "이후 12월 충전잔량 감축 공문을 받은 후 65%로 가동했고, 시스템 업그레이드 등 관련 조치를 완료하고 100%로 상향 조정해 운영하던 중 불이 났다"고 말했다. 

자료=전북 장수소방서
자료=전북 장수소방서

소방서의 화재조사서에 따르면 사고 발생 당일 이 사업장 관계자는 오후 3시 41분께 ESS 설비에 이상이 있다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고 오후 4시께 현장에 도착했다. 출입문 틈새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오후 4시 16분 관할 소방서에 신고했다. 사고 발생 전 전력변환시스템(PCS) 경보 이력을 살펴보면 오후 3시 41분 15초 PCS에서 '직류 지락 신호(Fault)'가 최초 감지됐고, 특정 배터리 랙에서 '경고 또는 고장(Warning or Fault)' 신호가 감지된 후 '경고(Warning)'가 표시됐다. 

이후 41분 38초에는 8번 랙에 있는 모듈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의 저항보드 고장 신호(Rack8 Fault MBMS OBD Error)가 감지됐다. PCS 신호에서 고장(Fault) 상태는 장비를 계속 가동하면 안된다는 의미고, 경고(Warning)는 경미한 문제를 뜻한다. 해당 사업장은 오전 10시 배터리 충전이 시작돼 오후 2시 6분에 종료됐고, PCS 이상 신호가 표시된 지 1시간이 지나지 않아 오후 4시께 사고가 났다. 

조사서에는 8번 랙에 있는 모듈 10번 속의 배터리 셀에서 원인미상의 이상발열에 의해 화재가 발생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발화점은 추정했지만 배터리가 화재로 전소돼 발열 원인을 찾는 것은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개선 방안으로 배터리 발열 현상을 제어하기 위해 모듈 간격을 띄워 열축적을 방지하거나 배터리 셀 제작에 결함이 있다는 지적에 따라 배터리 성능을 향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앞서 조사위에서도 SOC와 화재가 상관 관계가 있다는 내용은 없었다"면서 "충전잔량 하향 시 일시적으로 화재를 막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상향 조정이 화재 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 각 업체마다 설계마진을 고려해 규격을 설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SOC 기준 설정 문제는 이전부터 다뤄졌던 사안이다. 올해 1월 조사위 발표 전 에너지기술평가원의 ESS 화재 세미나 회의록에는 "국외의 경우 SOC '로우 리미트(Low limit)'가 있으며 태양광의 경우 최대값(Max) 80%, 최소값(Min) 70%인 반면 국내는 100% 충전(Full Charge) 기준으로 95%, SOC는 5~95%"라면서 국외와 국내 상황을 비교하고 있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SOC를 70%에서 95%로 상향한다고 바로 화재가 발생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사고 발생 가능성이 상승하는 건 맞다. 원복을 했음에도 아직 불이 나지 않는 곳은 운이 좋다고 밖에 볼 수 없다"면서 "SOC를 95%로 올린 상황이 화재 유발과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사위 활동 당시에도 정부에 관련 내용을 전달한 바 있다"면서 "사고 원인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화재가 또 다른 곳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는 판단조차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 '모사한' 셀 '180회' 충·방전 시험은 충분했나

앞서 조사위는 △배터리 보호시스템 미흡 △운용관리 부실 △설치 부주의 △통합관리체계 부족 등 4가지를 직·간접 화재원인으로 꼽았다. 일부 배터리 셀에서 결함이 발견된 부분에 대해서 조사위는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조사위는 LG화학 배터리가 사용된 사업장의 경우 다수의 사고가 동일공장의 비슷한 시기에 생산된 배터리가 사용된 사실을 확인하고 생산 과정의 결함을 확인하기 위해 셀 해체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1개 업체의 일부 셀에서 극판접힘과 절단불량, 활물질 코팅 불량 등 제조 결함을 확인했다. 

그러나 극판접힘과 절단불량을 모사한 셀을 제작해 충·방전 반복시험을 180회 이상 수행했지만 발화로 이어질 수 있는 셀 내부의 단락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결함이 있는 상태에서 배터리 충·방전 범위가 넓고 만충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경우 자체 내부단락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배터리 실증시험과 관련된 기관은 한국전력과 전기안전공사, 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 화학융합시험연구원, 산업기술시험원(KTL) 등이다. 한전은 삼성SDI 배터리를, 전기공사는 LG화학 배터리를 이용해 각각 시스템 및 환경적인 요인과 관련된 시험을 수행했다. 전기공사의 ‘화재발생 ESS 폐기 처분 보고서’를 보면 모듈 66개로 실증시험을 실시한 결과 화재가 발생했다. 이에 두 기관은 배터리 결함과 관련된 충·방전 시험과는 관련이 없다. KTC와 화학시험연구원 측도 해당 시험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밝힘에 따라 KTL의 전력신산업기술센터에서 실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조사위의 실증시험이 미흡했다고 지적한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에이징 시험(전지 활성 시험의 일종)은 원래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서 "아마 결과 발표까지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180회 정도만 시험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모사한 셀을 이용한 시험은 아무 의미가 없다. 조사위는 단셀로 충·방전히는 시험을 실시했는데 수백개의 셀을 직·병렬로 연결시켜 충·방전하는 것과는 다른 조건"이라면서 "재생에너지 연계형 ESS가 중대형 전지 중 가장 극악한 환경에서 가동된다는 측면에서 지금 화재 발생 규모를 봐서는 딥 싸이클(Deep cycle)로 3000번 정도는 돌려봐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 배터리는 정말 문제없나···전기공사 "블랙박스 복원 중"

22번째 ESS 화재였던 지난 5월 4일 경북 칠곡군 화재조사보고서에 따르면 LG화학 측은 지난해 11월 30일과 12월 12일, 올해 4월 8일 총 3차례에 걸쳐 배터리 교체와 철거 작업을 진행했다. 오창공장에서 생산된 JH3 셀 1만5708개로 운영하던 중 모듈전압편차로 난징(南京)공장 제품을 교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난징공장에서 제작된 JH3 모델은 지난해부터 문제의 배터리로 지목된 바 있다. LG 측은 왜 배터리를 교체한 것일까. 

자료=전남 장수소방서
자료=경북 칠곡소방서

LG화학 관계자는 “모듈전압편차는 ESS 운행 중 발생할 수 있는 현상으로 화재 원인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면서 “모듈전압편차에 대한 사후관리서비스(A/S) 차원에서 해당 사업장에서 동일 모델의 배터리 모듈을 여러번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칠곡 ESS 외 다른 사업장에도 LG화학은 배터리 교체 작업을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ESS 화재가 여러군데서 발생한 후 LG화학 측은 문제가 된 배터리 교체하고 철거하는 작업을 반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LG화학 측은 "조사위 결과처럼 환경적으로 부적합한 사항이 있어 여러 사업장의 배터리 모듈 교체를 진행한 적은 있지만 칠곡 ESS 배터리 모듈 교체와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몇 년 전 중국 난징공징이 사드 등의 이슈로 전기차 물량이 막히자 급하게 증설한 전기차 배터리용 생산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했고, 이 과정에서 JH3 모델이 처음으로 난징공장에서 출시됐다고 알고있다"면서 "해당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한 초도품이 이번에 화재가 난 ESS 설비에 대부분 사용된 모델"이라고 말했다. 

자료=전기안전공사
자료=전기안전공사

최근 LG화학은 일부 사업장에 ‘파이어 프루프(Fire Proof) HDD’라는 추가 데이터 저장 장치를 설치했다. 일반 하드디스크 대비 데이터 손실 방지 기능성을 높였기 때문에 화재로 인한 데이터 손실을 어느정도 방지할 수 있다. 최근 전기안전공사는 예산군 ESS 설비의 블랙박스 하드디스크 데이터를 복원한다는 계획을 내부적으로 수립했다. 만약 사고 전후의 감시데이터가 제대로 복원될 시 과거 사고들에 비해 좀 더 구체적인 화재 원인 규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의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별도 공간에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기준이 없었지만 최근 화재 영향으로 배터리 제조사 측에서 블랙박스 형태의 보호 장치를 설치하고 있다"면서 "최근 화재의 경우 일부 확보된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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