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지수 기자] "값이 싸서 고민했는데 가족들이 먹는 거니까. 불안해서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탓에 양돈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5일 서울 중구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는 삼겹살을 몇 번 들었다 놨다 하더니 옆에 있는 쇠고기를 집어들었다. 이 대형마트에선 양돈 농가를 돕고 위축된 돼지고기 소비 촉진을 위해 삼겹살 할인행사를 벌이고 있었지만 손님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정육코너 손님 15여명 중 2~3명만 구경할 뿐이었다.
14일 저녁 찾았던 서울 용산구 대형마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폐점시간과 맞물려 돼지고기를 대폭 할인 판매했지만 사려는 소비자는 드물었다. 이날 서울에 있는 한 대형마트에서는 삼겹살값이 100g당 1000원대로 떨어졌다.
삼겹살을 산 50대 남성은 "아내가 김치찌개에 넣을 고기 좀 사오라고 해서 들렸는데 찜찜한 게 사실"이라며 "값이 워낙 싸서 집었다"고 말했다.
삼겹살 가격은 지난 9월17일 첫 ASF 확진 이후 올렀지만, 최근 들어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14일 기준 제주를 제외한 전국 도매시장에서 돼지고기 1㎏은 3084원에 거래됐다. 9월18일 1㎏당 가격 6201원과 비교하면 절반가량 떨어진 셈이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돼지고기 도맷값이 치솟아 대형마트 역시 가격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일반적으로 가축 전염병이 발생하면 방역당국 조치로 공급량이 줄면서 가격은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양돈 농가들이 물량을 쏟아내면서 가격은 내림세로 바뀌었다.
대형마트는 할인행사를 마련했다. 업계 1위인 이마트는 오는 16일까지 1등급 이상으로 선별한 국내산 냉장 삼겹살과 목살을 각각 100g당 1680원에 판다. 이는 기존 판매가(1980원)보다 15%가량 저렴한 수준이다. 이마트는 이번 행사를 위해 삼겹살 120톤과 목살 40톤을 준비했다. 이는 삼겹살 기준 평상시 4주 동안 판매할 수 있는 물량이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도 같은 기간 국내산 삼겹살과 목심을 각각 100g당 1680원, 1690원에 팔기로 했다. 대형마트들은 16일 도매가 추가 하락 여부를 살핀 후 한 차례 더 가격을 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여전히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나 쇠고기를 찾았다. 용산구 주민 권모(40)씨는 "아무래도 입으로 들어가는 먹는 것이다 보니 신중해지는 게 당연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니 당분간은 닭고기나 오리고기를 먹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모씨도 "굳이 돼지고기를 먹을 필요가 있냐"며 쇠고기를 집어들었다.
A 대형마트는 9월26일부터 29일까지 돼지고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줄었다. 반면 수입쇠고기와 닭고기 매출은 각각 28%, 25% 늘었다. B 대형마트도 9월23일부터 27일까지 삼겹살 매출이 전주(9월16일~20일)보다 3.3% 줄어든 반면 닭고기와 수입쇠고기는 각각 4.5%, 18.7% 뛰었다.
A 대형마트 관계자는 "1차 행사는 16일까지 이어진다. 이후 행사는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말을 아꼈다. 또 다른 대형마트 관계자 역시 "가격 인하 여부에 대해 내부에서 검토 중"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