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서 위법사항 제외하는 방안 '유력'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우리가 잘못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잘못이라면 시공사 측에 있죠. 물리력을 행사해서라도 사업을 강행하고 싶지만, 관에서 인가를 받아야 할 문제가 많은 게 현실이에요. 제안서에서 위반사항만 제하고 사업을 빨리 추진해야 합니다."(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 조합 관계자)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 조합이 '시공사 제안서 수정'으로 사업 추진 방향을 굳히는 모양새다. '재입찰'을 권고하는 정부와 달리 사업의 지연을 막으려면 위반사항만 빼놓고 시공사 선정에 나서야 한다는 판단이다.
지난 28일 찾은 용산구 천복궁교회. 이곳은 '한남3구역 재개발조합 정기총회'에 참석하려는 인파로 가득했다. 최근 많은 이의 이목이 쏠린 탓에 외부인의 출입을 경계하는 보안업체의 요원도 다수 동반했다.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총회에선 건설사들의 합동설명회 대신 예산사용추인 등의 내용만 다뤄졌다. △올해 수입예산안 승인 △운영비 및 사업비 예산 승인 △조합 차입금 추인 및 원리금 상환 승인의 건 △계약이행보증금 사용 추인의 건 등이 상정 안건이다. 총 11건의 안건은 모두 가결됐다.
이중 '조합정관 변경의 건'이 포함됐는데, 안건이 통과함에 따라 향후 시공사 선정 총회에선 과반득표 대신 경쟁사보다 많은 표를 얻은 업체가 시공사로 선정될 전망이다.
이날 관심사는 안건보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입찰 진행 여부'였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한남3구역 사업장에 철퇴(입찰 무효·재입찰)를 내린 후 혼란이 가중되고 있어서다.
앞서 국토부와 서울시는 지난 26일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 입찰에 참여한 건설 3사가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검찰 수사 의뢰를 결정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용산구와 조합엔 시정조치를 요구한 상태다.
조합원들은 저마다 13년 만에 탄력이 붙은 사업을 지연시킬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조합의 비리, 비대위 출범 등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사업 진행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총회에서 조합장이 이와 관련해 언급한 선택지는 2가지다. 정부의 권고대로 앞서 행했던 입찰을 무효하고 '재입찰'을 하는 것과 현대건설·대림산업·GS건설의 제안서 중 위반사항을 제외하는 '제안서 수정'이 그 대상이다.
조합원들이 원하는 방향은 단연 후자다. 총회 말미에 즉석에서 진행된 거수투표에선 '제안서 수정'에 손을 든 조합원이 3분의 2를 훌쩍 넘어서며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했다. 아예 재입찰을 하자는 조합원은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에 그쳤다.
일단 조합 측은 내달 열릴 대의원회에서 추진 방향을 최종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선 총회에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확인한 만큼, 조합이 제안서 수정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고 있다.
수정으로 결론이 나면 조합은 건설 3사가 제안한 조건 중 △사업비 무이자 지원 △이주비 금융비용 △임대주택 제로 △마이너스 옵션제 △분담금 유예 등 20여 가지의 위법사항을 제외해야 한다.
다만 서울시가 거듭 재입찰을 권고하는 탓에 조합과 정부 간의 기 싸움은 한동안 이어질 예정이다. 서울시는 같은 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시공사들이 문제가 있는 제안서를 제출했으니 기존 입찰을 중단하고 재입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조합에 전했다.
권고사항이어서 최종 결정은 조합의 권한이나, 남은 인허가 절차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시의 의견을 무시하기도 힘든 처지다. 첫 단추를 다시 꿰어야 할 경우 재개발 사업은 최소 6개월가량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조합 관계자는 "사업 강행보다는 국토부와 서울시의 의견을 조건부로 수용하는 타협이 필요하다"면서 "결국 재입찰을 하더라도 기존에 입찰에 참여했던 3개 건설사는 포함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공사비만 1조9000억원에 달하는 한남3구역은 한남동 일대 38만5687㎡ 면적에 총 5816가구의 아파트를 짓는 사업이다. 이날 총회엔 전체 3880명 중 서면결의 또는 위임장을 받은 이를 포함한 조합원 2400여 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