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기업'"
최태원 "AI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 ‘딥 체인지’ 달성"
구광모 "사업 혁신, 새 고객 가치 창출, 시장 주도하자"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재계 4대 주요 그룹이 차세대 먹거리로 인공지능(AI)을 주목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구광모 LG 대표, 최태원 SK 회장 등 총수들이 직접 그룹의 미래를 걸고 AI 생태계 구축을 주문하는 등 역량 강화에 나섰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그룹들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AI를 낙점하고, 기술 개발 및 인재 발굴 등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룹 총수들이 직접 진두지휘에 나서는 등 사활을 건 총력전 양상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매년 AI 석학들을 초청해 ‘삼성 AI 포럼’을 여는 등 최신 연구 동향을 공유하며 미래 혁신 전략을 직접 챙기고 있다. 특히 현장에서 경영진들을 만나 AI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AI 투자와 관련해선 직접 보고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고 시스템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AI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은 지난 6월에는 NPU(신경망처리장치) 분야 개발 인력을 지금의 10배 이상 많은 2000명 규모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인재 확보 및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까지 한국을 비롯, 미국 실리콘밸리, 영국 케임브리지, 러시아 모스크바, 캐나다 토론토 등 5개국에 AI 연구센터를 설립, 운영 중이다. 또 미국 프리스턴대 세바스찬 승 교수, 미국 하버드대 위구연 교수, 미국 코넬공대 다니엘 리 교수 등 세계적인 석학을 영입하고, 글로벌 선진 연구자들과의 오픈 이노베이션도 병행하는 등 글로벌 AI 인재 및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최근 AI 분야의 핵심 석학들과의 미팅에서 "더 큰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생각의 한계를 허물고 미래를 선점해 가자"고 말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도 자율주행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AI 기술 확보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자율주행 전문 기업 앱티브와 조인트벤처(JV)를 만들기로 하고 20억달러(2조4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AI 기반 통합 제어기 개발을 위해 미국 인텔(Intel) 및 엔비디아(Nvidia)와도 협력하는 한편, 중국 바이두(Baidu) 주도 자율주행차 개발 프로젝트인 '아폴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또 지난 2017년 이스라엘 라이다 전문 개발 스타트업 옵시스에 투자한 후 미국 자율주행기술 기업(오로라, 메타웨이브), AI 전문 기업(퍼셉티브 오토마타, 알레그로.ai) 등에 투자했다.
미국 미래 모빌리티 연구기관인 ACM(American Center for Mobility)에도 창립 멤버로 참여, 첨단 테스트 베드 건립에 500만달러(약 56억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현대차가 지난해부터 올해 10월까지 성사된 글로벌 기업(연구소 등 포함)과의 전략적 협업·투자 건수는 34건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15일 '미래차 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2025년까지 모빌리티 기술 및 전략에 총 41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가까운 미래에 고객들은 도로 위 자동차를 넘어 UAM(Urban Air Mobility·도심 항공 모빌리티), 라스트마일 모빌리티, 로봇 등 다양한 운송수단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제조사에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 회사로 탈바꿈할 것이며, 우리는 이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기업'으로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과 AI 등 혁신기술을 '딥 체인지'(Deep Change)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그룹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신사업 분야의 인적 자본 축적 및 확보를 위한 그룹 차원의 통합 교육 인프라인 ‘SK 유니버시티’도 내년 출범을 앞두고 있다. 교육에는 부 임원, 외부 교수진, 실무 전문가, 상근 연구원 등이 참여하며, 교육 과정은 AI, DT, 사회적 가치, 글로벌, 리더십, 매니지먼트, 행복, 디자인 등 8개 분야로 구성된다.
그룹 내에서는 SK텔레콤이 AI 기술 확보에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미래사업 분야에 11조 원을 투입하고 AI와 IoT, 스마트홈 에너지관리 솔루션 등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 SK텔레콤은 지난달 28일 카카오와 3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교환하고 통신·커머스·디지털 콘텐츠·미래 ICT 등 4대 분야에서 양사 간 긴밀한 협력을 추진키로 했다. 최근 5세대(5G) 이동통신을 기반으로 인공지능(AI), 커머스, 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가 촉발되고 있는 만큼 5G 시대 ICT 생태계를 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최 회장은 지난 8월 열린 ‘2019 이천포럼’에서 "AI, DT 등 혁신기술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우리 고객 범위를 확장해 고객 행복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통해 SK가 추구해 온 ‘딥 체인지’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구광모 회장 역시 AI 생태계 조성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 9월 사장단 워크숍에서 AI, 빅데이터 역량을 강화하고 스마트팩토리 적용 확대, 연구개발(R&D) 효율성 개선을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확대 등도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LG그룹은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유플러스, LG CNS 등 5개 계열사가 총 4억2500만달러를 출자해 설립한 투자회사인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통해 AI 기술 확보에 나선다.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현재까지 13개 스타트업에 총 3300만달러를 투자했다.
또 LG전자, LG화학, LG유플러스, LG CNS 등 4개 주요 계열사를 통해 소프트뱅크벤처스가 AI 분야에 집중 투자하기 위해 조성 중인 약 3200억원 규모의 펀드(Growth Acceleration Fund)에 200여억원을 공동 출자하고 국내외 유망 AI 스타트업과 협업에 나설 계획이다. 나아가 오픈 이노베이션도 추진한다.
AI 인재 확보를 위해 지난 4월 LG사이언스파크 산하 AI 조직인 ‘AI담당’도 신설했다. 또 지난 5월부터는 미국 카네기멜론대와 캐나다 토론토대와 협업해 AI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 및 인증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지난 10월 기술면접을 통해 12명의 석·박사급 인재를 선발했다.
LG는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등을 통한 사무 자동화 △오차 없이 제품을 제조하고 검증하는 공정 설계 △부품 현황과 업무 순위 등을 고려해 스스로 학습하며 최적화하는 공장 지능화 등 기업용 AI 연구도 진행해 나갈 방침이다.
구 회장은 사장단 회의에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시대 핵심 기술을 활용해 사업을 혁신하고, 새 고객 가치를 창출해 시장을 주도하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