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이달 발표될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선진화 방안'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1700조원까지 불어난 가계빚 증가세를 안정화시킬 대책이 시급한 상황에서 '대출 완화'를 통해 민심을 잡으려는 정치권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어서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선진화 방안' 발표 시점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 가계부채 방안은 이달 중순 발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금융위,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가 세부 내용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발표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발표는 다음주에도 어려울 것으로 보여 빨라야 이달 말께나 가능할 전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협의가 필요한 사안들이 있는데 (조율에) 시간이 좀 걸리고 있다"며 "다음주에도 잡힌 발표 일정은 없다"고 말했다.
현재 부처 간 이견이 발생하고 있는 부분은 청년·무주택자 대상 대출규제 완화다. 그동안 금융위는 가계부채를 조이기 위해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과 청년·무주택자에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 등 크게 두 방향으로 가계부채 선진화 방안을 마련해왔다.
4~5% 수준이었던 가계부채 증가율이 코로나19 사태로 8%대까지 치솟은 만큼 대출을 조일 필요가 있다는 게 금융위의 기본 입장이다. 다만 그러면서도 강도 높은 대출 규제로 청년층과 무주택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이를 보완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봤다. 보완 방안으로는 청년·무주택자 주택담보인정비율(LTV) 10%p 완화, 40년 모기지 도입 등을 검토해왔다.
그러나 부동산 대책 주무 부처인 국토부가 LTV 규제 완화 방안에 우려를 표하면서 막판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출규제 완화가 자칫 주택구입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 이달 7일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된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폭이 다시 확대되고 있어 부동산시장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국토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재보궐선거 참패 원인을 부동산으로 꼽은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대출규제 완화 목소리를 내면서 가계부채 방안의 스텝은 한층 더 꼬이는 양상이다.
당대표에 출마했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최초로 자기 집을 갖는 무주택자에게는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을 90%로 확 풀어서 바로 집을 살 수 있게 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규제 완화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정부 부처도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정치권의 이같은 요구를 무작정 수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들은 집값과 가계부채가 크게 올라선 상황에서 대출규제를 급격하게 완화할 경우 시장 혼란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시장에 유동성이 많이 풀려 있는데, 대출규제를 완화하는 순간 새로 영끌을 해서 주택을 사겠다는 매입 수요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집값이 이미 많이 뛰었는데, LTV까지 급격하게 풀어주면 그만큼 원리금 상환 규모도 커지고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의 잠재적 위험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